저녁강가 단상

천생 글을 써야될 사람인데...

안동꿈 2009. 10. 31. 11:30

퇴근길,지하철을 타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다른 과에 근무하는 언니와 만났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며 시인인 남편과 사별 후, 남편 생각에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등단한 시인 언니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니, 당연히 글 쓰는 사람을 좋아하여 그 언니와 자주 얘기를 나누었었다. 퇴근길에 동행하여 할 얘기는 많고 시간은 짧아 말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누가 내용을 빼고 우리 얘기를 듣게 된다면 아마 싸우는줄 알았겠다.

 

다음날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니 시인의 감성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지, 우리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날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잊혀진 계절의 클라이막스 부분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주옥같은 가사가 자꾸 생각나더라고 얘기하며, 요즘 대중가요들의 가사들은 바로 그 의미 외엔 더 어떤 상상이나 의미 확장이 있을 수 없고 감각적인 것에 한숨을 서로 나누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시절 들었던 둘다섯의 긴머리소녀, 밤배, 일기, 먼훗날 그런 노래들을 이야기했다. 황순원의 '소나기' 를 떠올리게 하는 긴머리소녀의 가사를 얘기하면서, 삶도, 사랑도, 노래도 다 순수했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노래 가사들은 순수하면서도 그 노래가사 이상의 의미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상상속에서 재해석하게 하고, 다시 각자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시가 될 수 있게 했다고도 얘기했다.

 

내릴 때가 다되어 뜬금없이 언니가 하는 말, '며칠전 퇴근길에 갑자기 카메라 들고 저녁 노을을 찍는다고 이리저리 뛰는걸 보고, 저거저거 천생 글을 써야될 사람인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며칠전 퇴근하려고 사무실 밖을 나서는데,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부리나케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노을을 찍으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모습을 그 언니한테 들켰었다. 다른 사람한테라면 괜히 내색하기 쑥스러워 무슨 못다한 업무 처리하듯이 모른척 했을텐데 언니라서 사실대로 얘기했었다. '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과 결국 그것을 잡아 건져내려고 하는 고집. 저거 글 쓸 사람인데'라고 생각했다면서, 글을 쓰는 일에 조금더 적극적이기를 내게 충고해 주었다. 이럴 때 '꿈보다 해몽'이라고들 하는건가.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딱히 이름짓지 못한 어떤 것으로 마음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