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당직날 풍경

안동꿈 2009. 11. 14. 15:57

금요일 오후. 

못다한 일로 분주한 가운데 일주일을 마감해야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오랜만에 돌아오는 당직일. 혼자서 특별히 할 일 없이 종일 당직실을 지키는게 유일한 일이다. 기분좋게 내일 할 일을 수첩에 죽 나열하였더니 무려 열가지나 된다. 특별히 바쁜 일만 적은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해야할 일은 다 적었으니 아마 11월말까지 해야할 일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은 하루를 꼬박 들여서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도 욕심내어 적어놓았으니, 가끔 내가 참 시간 관념 없이 산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당직날 아침 수첩을 꺼내어 열개의 목록 밑에 블로그, 책읽기까지 붙여 놓았으니 혹여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되는줄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사항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드는 압권이 있었으니, 저녁 퇴근길에 오랜만에 온 친구의 전화였다. 평소 전화를 하려다가도 혹 친구가 바쁠까봐 참곤 했는데,

" 내일 시간 있나? 같이 영화 좀 보자고 "

" 잉?. 우째 이런 일이. 하고 많은 날 중에 내일이냐. 내일 당직이다. 근데 무슨 영화."

" 응. '여행자'라고, 몇 군데 밖에 상영 안하고, 잔잔한 영화래"

" 니가 추천하는거니 어련할까. 대충 제목만 들어도 좋은 영화일것 같다. 빨리 보고싶네."

" 당직하면 전에처럼 혼자 지키는거지? 놀러갈까."

" 응. 올 수 있으면 나야 좋지. 맨날 내 시간 때울 때만 불러서 미안해서 그렇지 "

" 그래. 내일 갈때 전화할께 "

 

수첩에 부지런히 기록했던 할 일 목록은 안중에도 없이, 전에 유래없이 당직날을 고대하며 사무실에 들어서니 남자직원 둘이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다. 신종플루 비상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울고 싶어라. 혹여 늦잠을 자고 있을 친구를 위해 좀 기다리다 문자를 보냈다.

나 : 당직실에 신종플루 비상근무 남직원 2명같이근무. 우쉬. 니 편한대로해 

친구 : 그럼 못가겠는데 주책이잖아. 너 시간되면 집에 갈때 학교 앞에서 차한잔 하고 가고,

         안그러면 다음주 중에 한번 보자 

나 : 어제 작은기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잤거든 오늘 내 마치는 시간에 아버님이 애 데리고 이리

      로 오기로 했어. 그러면 다음 월요일 저녁에 보는게 어떻노?

친구 : ㅎㅎ 그리 급하게 안 정해도 되는데 그래 그러자

나 : 내가 급해서 그라제...

 

현재 시각 오후 4시. 이제 목록표중 1개 완료되어 가는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블로깅에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