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나의 결혼 이야기

안동꿈 2009. 11. 15. 09:58

마흔이 넘어 새삼스럽게 결혼이야기를 하려니 몹시 쑥스럽다. 그러나 한번 정리(?)해 보고 싶은 재료라고 늘 생각해왔다.

 

1993년 9월에 결혼하였으니 올해로 나의 결혼생활이 만 16년째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직장에 들어가서 현실과 꿈의 괴리감을 더 절절히 느끼며 하루를 겨우 견뎌내고, 친구만나는 걸 낙으로 여기며 학생때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이 살던때였다. 

 

스물여섯 봄이 시작될 즈음. 올케언니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 사람은 어때요?' 하며사람을 바꿔가며 소개하는데, 나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한 사람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직장에서 돌아와보니, 약속을 다 정해 놓고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는 것이다. 언니가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아들인데, 부모님도 다 나오는 자리이니 약속을 어기면 큰 낭패라며 애원을 한다. 나는 내 방 문고리를 잡고 절대로 안갈 거라고 울었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상황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강하지 못하여 약속장소에 나갔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보다 여섯살 많았고, 키가 작았고, 아직 학생이었다. 나는 그를 만날때마다 가슴이 '쿵'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글쎄 긴장되어서라기보다 두려워서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분명하게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만나는 줄곧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내가 이끌려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를 정말로 좋아하고 그 없이 못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에게 싫다고 얘기 할 수는 없었다. 그를 보면서 특별히 자랑할 만한걸 찾을 수 없었지만, 내 가슴에 신념처럼 새긴 부분이 '그의 키가 작은 그 부족한 만큼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부분에서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으리라'(이 막연한 신념은 나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는 클래식을 굉장히 즐겼고,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로 전공자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식한 표를 내기 싫어서 몰래 클래식대사전을 사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늘 자신감이 넘쳤다. 별 가진 것도 없으면서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는지 부러울 따름이었다. 나에게 항상 낙제점을 주는 과목이 '자신감'이었으니, 그 앞에서 늘 끌려다녔다.

 

어느날 경주로 함께 여행을 갔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두시간여 동안 내 손을 계속 만지작 거렸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손을 만지는 것으로 그토록 애틋한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로 남아있다.

 

결혼을 결정할 즈음 어느날 친구를 붙들고 울면서 '나의 이 결정이 나의 남은 평생을 결정 짓는 건데, 너무 무거워서 혼자 할 수 없다. 힘들다.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이 결정을 내 내신해서 내려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따를텐데'그랬다.

 

지금 16년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면, 남편이 많이 참아 주었다(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제의 그 신념이 이건가 생각한 적도 있다). 결혼생활이 끝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참아주는 사람에 의해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대게는 여자들이 그 역할을 많이 하는것 같다. 결혼 20년정도 되면 '측은지심'으로 산다고 하는 계장님 말씀도 생각난다. 서로에게 '내가 없으면 저거 우째 살꼬'하는것이 그 측은지심의 뜻이라는데. 요즘 나도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지금껏 결혼의 시기와 대상에 대해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그 모든 것은 내가 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분이 정해놓은 길을 나는 걸어왔을 뿐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