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즐거운책읽기

바다의 기별 by 김훈

안동꿈 2009. 8. 9. 16:53

 

그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그와 먼저 만났다고나 할까?

보통 어떤 작가의 작품을 먼저 접한 후, 그 작가에 호기심이 생겨 그의 에세이를 찾게되는데, 그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채 우연히 직장내 도서관에서 그의 최근 작품인 이 에세이를 만났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이 한권의 에세이로 어떻게 그를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그에 대한 나의 작은 생각일 뿐이다.

 

수사학에 관한한 최일선에 선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가,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2학년때 낭만주의 문학에 아편처럼 매혹됐던 그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학교가 싫어졌고, 영문학이 싫어져서 학교를 때려치웠단다. 

 

「군소리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버리듯이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을 이순신은 쓰고 있더군요. 그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 그러나 나한테 그것은 놀라운 문장이었습니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 부터 전해오는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고 씁니다. 아 좋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고불며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개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

 

그는 『난중일기』를 처음 읽은 20대 초반부터 37년이 지난 어느날 『칼의노래』를 쓰기 시작해서 40일만에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소설은 그의 삶의 슬픔과 고통과 더불어 잘 숙성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한다.

 

오랜 신문기자생활을 통해서 그는 언어를 통한 사실과 의견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지 않았을까? 그는 언어를 사용할 때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주변을 사실그대로 과학적으로 인식하므로써 이것이 무엇이며, 왜 이러하며,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와 관계된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사실과 관련된 것이라면 의견은 이러한 사태는 내 마음에 드느냐,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저 사람은 내 편인가와 같은 난폭한 망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과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고있다. 현대를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정의한 어느 사회학자와 같은 관점으로 그도 보고 있다고 생각됐다.

 

그의 말과 언어에 대한 세밀한 생각을 대하고 보니, 젊은 날 사람의 생각을 유형화 시키는 언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고뇌했던 생각이 난다. 말의 유창함과 말 더듬이를 비교하며.

 

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의 기존 언어로 간단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는것은 너무나 엉터리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나의 머리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이 입을 통해 말이 되어 나올 때 그 생각덩어리를 진실되게 내어놓기 위해 애를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최선을 다하는 행위가 조금이라고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행위는 더듬어져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남의 언어로 쉽게 내 뱉어버리는건 유창하지만 무책임하며 거짓일 수 밖에 없고 진실을 향한 몸부림인 그 말더듬이가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일기장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쨌든 김훈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