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있어서 '읽기'란 무엇일까.
저자는 만약 읽기와 쓰기 둘 중에서 하나만 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면 읽지 못하는 삶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고백한다.
작가에게 '읽기'는 '첫사랑'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자는 소설가인 만큼 '읽다'에서 문학작품에 한정하여 쓴 것 같다. 소설을 통하여 '읽기'를 풀어냈다. 그는 읽기에 대해서 여섯가지로 정리를 하고있다. 그의 말로 요약해 본다.
위험한 책읽기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한다.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된다. 독자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위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우리는 돈키호테와 에마를 미치광이 취급하지만 책을 읽을 때의 우리도 동일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잘못 보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또 현실일까? 인간이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현실에 너무 집착해 자기 내면의 정신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책 속에는 길이 없다 -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 측량기사 K처럼 우리는 성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성을 찾는지도 모른다. 독자는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서 작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찾기를 기대하며 읽어간다. 소설에는 감춰진 중심부가 있다. 그것은 소설의 표면과는 멀리 떨어진 배후 너머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고, 계속 움직여서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헤매기 위해서일 것이다. 분명한 목표라는게 실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다.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읽는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험버트 험버트는 38세의 남자로 12세 소녀를 사랑하는 전형적인 소아성애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 생각이 있고 참을 수 없는 인물이 있지만 매력적인 문체라든가 뒤를 궁금하게 하는 플롯이라든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행사하는 매혹의 힘에 저항하면서 독서를 수행해나간다. 우리는 소설을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설이라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이다.
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거침없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괴물들을 만난다. 우리는 그들의 내면을 보게 되면서 그들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그들의 약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스스로를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독자들로 하여금 혹시 자기 안에도 이런 괴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내면이 어느 정도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한편 독자의 내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 소설 쓰기란 남의 것을 잠깐 빌려왔다가 그것을 다시 책의 우주로 되돌려주는 작업이다. 책은 독립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물이나 바다처럼 유동적이다. 독자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계약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읽기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들을 형성해가고 기존 생각들을 수정해가면서 유일한 나를 만들어간다. 기존의 나를 바꾸는 일은 고통스럽기도하고 자존심이 긁히기도한다. 우리는 한낱 도구 정도로 여기며 책을 펼칠지 모르지만 거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결코 내가 주인일 수 없다. 우리는 책의 마력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댄다.
일찍이 이러한 책의 마력을 충분히 경험한 자일수록 감히 그것의 창조자를 꿈꾸지 않았을까? 그러나 저자는 겸손하게 고백한다. 우주의 바다에서 가져다쓰고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썼나보다.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것을 모르는것 같아서다."(이상국의 '시파는 사람'중에서)
그러고 보니 정말 작품의 재료인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그 배경(풍경),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도구인 언어도 모두 원래있던 것이다. 작가는 다른 모양으로 조합하되, 독특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치한다. 우리 삶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독특한 누군가의 시각으로 본 우리들의 삶을 대할때 우리는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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