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든사이 깨끗하게 닦여진 싱크대 위에 읽던 책을 올려놓고 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물 끓이는 주전자의 불을 끄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한다.
저녁창으로 들어온 노을빛이 부엌을 붉게 물들일 때 참지 못해 옥상으로 뛰어가며 그 풍요로운 황혼에 나를 맡길 기대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만큼 즐거워진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골라 커다란 나무그늘에 앉아 읽어줄 때 지나가던 산들바람이 책장을 넘기며 손등을 간지럽히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향기짙은 커피집에 앉아 서로의 커피비율을 여전히 기억하며, 레테의 강을 지나 잔잔한 호수같은 인생의 여정을 서로에게서 느끼며 모든 일에 대하여 한결 너그러워진 서로의 눈빛을 보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헤어지기 싫어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다음 버스가 오면 꼭 갈께" 하며 한 대 두 대 버스를 보내버리는 그 애틋한 우정에 난 한없이 즐거워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긁적이기 시작한 글이 완성이 되어 작은 결론에 이르를 때 난 정말 즐거워 진다. 이젠 제법 자란 아이에게 육아일기를 읽어줄 때 사랑이 흘러넘칠듯한 눈망울로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아이들과 콩나물을 다듬는 일은 나를 즐겁게 만든다.
시장을 오가며 눈여겨 보아온 소라색 원피스 드디어 사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진다.
- about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