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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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단상

안동꿈 2009. 5. 30. 11:13

  며칠전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에 대여섯명의 젊은 학생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대폰 통화중이었다. 대충 듣기에도 그들의 대화는 끝없는 일상의 대화, 한마디로 수다일 뿐이었다.

 

  가을이면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길을 온통 덮어버린 노란 은행잎, 잎이 다 떨어진 고독한 플라타너스...

 

  만약 휴대폰이 없다면 우리는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다.

  특별히 사색의 시간을 갖지 않더라도 길을 걸으며 그 다음일들을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또 만날 사람을 기다리며 우리는 기다림의 멋과 여유를 알게 된다. 그러나 휴대폰은 우리들에게 그런 여유를 빼앗아 가는것 같다. 여전히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끝없이 부딪히는 현실들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사색들은 마치 현실의 거친 바람에 메말라진 우리들의 손에 스며드는 로션처럼 상쾌함을 준다.

 

  어떤이들은 휴대폰의 편리함을 내세워 반박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번의 나의 경험을 듣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전 업무상의 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어느 장소에서 만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하는 상황으로,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막상 지하철역에 가보니 입구에서 기다려야 할 지 개찰구를 지나 지하철 플랫포옴까지 가서 기다려야 할지를 정하지 않은 걸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 분이 노포동쪽에서 오니까 지하철을 타고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후자쪽을 택하고 기다렸다. 지하철을 몇 대 보내고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분이 오지 않아 지하철역 입구와 플랫포옴을 오르락내리락 서너번쯤 하였을까 저멀리서 그분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도 내가 출발하는 곳의 위치상 버스를 타고 올 것을 생각해서 지하철역 입구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요즘 그토록 흔한 휴대폰을 둘다 갖고 있지 않아 10여분을 헤매었지만 잠시 서로에 대한 배려에 가슴뭉클한 사건이었다.

 

  영화로 감동을 얻으려면 두세 시간을 들여야하고 책으로는 적어도 예닐곱 시간은 든다. 사려깊은 사람과의 만남은 순간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휴대폰만 던져 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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