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우리 부서에서 퇴직하신 한 상사의 부고가 전해졌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도, 같이 근무한 적도 없는 분이다.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나가서 게시판에 올리고 조기도 챙겨보냈다. 아직 일흔이 채 안되신 나이에 세상을 달리하셔서 주위에서 많이 안타까워들 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 점심 식사중에 그분과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의 추억담이 오갔다. 그분이 어느 부서 계장님으로 계실 때 계직원이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돈이 없어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양복을 사 입으라고 적잖은 돈을 건넨 사연을 비롯하여, 과장으로 있을 때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타부서로 발령이 나면 꼭 개인 통장에서 돈을 찾아 쥐어 보냈다고 한다. 그때 서무였던 동료직원은 그분 통장에서 돈을 뽑아오는 심부름을 자주 했는데, 항상 마이너스 통장인데도 빠짐없이 직원들을 챙기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과장님. 이제 좀 그만하세요." 하고 대들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부서장으로서 수시로 회의나 보고회 석상에서 보고를 하게 되는데, 직원들이 별도의 설명자료를 만들지 않도록 평소 전자문서 자료를 통해 내용을 숙지하고 항상 공부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언성을 높여 화를 낸다든가 짜증 섞인 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분을 아는 직원들은 누구도 예외없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옆에서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직장 생활하며 존경스러운 상사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렇게 지성과 따뜻한 마음을 고루 갖춘 상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직장생활 이십여년이 되고보니 또래들이 중간 관리자로 나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누구나 승진을 바라고 관리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관리자의 자리가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직원들에게 너그럽게 대하자니 만만히 볼까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엄하게 하면 독한 상사 소리 들을 것 같고, 또 직원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기한이 되어도 처리되지 않는 일은 어느 시점에서 언급을 해야할 지 등등 모든 일에 도리어 직원들의 눈치를 보아야 할 입장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돌아가신 그분인들 관리자의 길이 쉬웠겠는가. 그러나 후배들에게 신뢰와 존경받는 분으로 오래토록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었으리라.
이젠 평직원이 아니니 좀 편안히 지내보자는 생각이 아니라, 상사로서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 전체의 업무를 파악하고자 더 부지런히 공부했을 것이다. 또한 일 뿐만 아니라 수하에 있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지려 했을 테고 그래서 부지런히 형편도 살피고 따뜻하게 배려했을 것이다. 일의 진척이 늦을때 더 인내하였을테고 의기소침한 직원들의 이유를 더 부지런히 살폈을 것이다.
상사가 능력있게 일 잘하는 직원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의 능력과 별개로 그들의 생활도 마음도 살피고 배려하는 상사는 흔치 않은 법이다.
그것이 결국 길이 후배들에게 회자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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