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즐거운책읽기

거리 소년의 신발 by 이성주

안동꿈 2018. 3. 17. 11:12

평양에서 당 간부의 아들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저자는 아버지의 체제 비판 발언으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족들은 경성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들을 모두 내다팔고 온 가족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매달려도 굶주림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족이 가만히 앉아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1주일 만에 돌아오겠다며 중국으로 가고,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먹을 것을 구하러 어머니 마저 집을 나간 뒤 그는 꽃제비가 됩니다.



같은 처지의 또래들과 뭉쳐서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훔치고 다른 패거리들과 싸우기도 하고 구호소에 갇혀 비참한 생활을 하다 탈출하기도 합니다.

 

꽃제비가 된 초반에 성주는 친구 용범이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근데, 꽃제비들한테 당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굶고 있잖아. 어쩌면 집에 우리 같은 자식들이 있는 어머니들일 거야. 그래서 그 아주머니들한테서 훔치면 그 집 애들도 굶을지도 몰라"

용범이가 조용히 있다가 후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 생각하면 죽고 싶어. 그런데 도덕성이라는 건 굶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배불러서 부르는 노래야. 넌 고상한 길로 가도 돼..."


음식을 훔치고 도둑질할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패거리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형제보다도 가까운 동무를 둘이나 잃습니다. 그 처절한 생존의 전쟁터 속에서도 서로 신의를 지키는 형제애가 꽃피고, 삶을 배우고, 부모님과의 추억을 붙잡고 희망이라는 것을 놓지 않으려 애씁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진실과 거짓을 저울질 해야하는 그 어린 것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묵상해 보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그들이 만난 생과 사의 얇디얇은 경계막에 숨겨진 삶의 철학들은 그 경계선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깨달을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고상하다고요? 더 수준이 높다고요?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 이상의 더 고상한 걸 추구하며 살고 있을까요? 여전히 더 기름진 것, 더 안락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더 비열하게 싸우는 건 아닐까요?


성주는 고백합니다.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다만 그 일이 벌어지길 기다릴 뿐이다."


성주는 먹을 것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다가 기차에서 우연히 외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오랫동안 손주를 찾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깊은 산 속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한약을 만들어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도와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와 가축을 돌보고 농사도 짓고 공부도 하며 지내리라 마음먹고 있는 그에게 중국에서 아들을 데려오라고 아버지가 보낸 브로커가 찾아오게 되고 그 사람을 따라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와서 아버지를 만납니다.


이성주는 2017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때 미국측 국빈 만찬 초청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탈북후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데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영국 외무부가 주는 장학금으로 워릭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곧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박사과정을 통해 한반도 갈등해결을 더 공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북한에 있는 형제들의 인권회복과 또 통일을 위해 강연도 하며 계속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의 지난날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고 밑거름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잘 쓰여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해 봅니다. 그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