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지난 글

부치지 못한 편지

안동꿈 2009. 11. 22. 13:36

1996년에 6주간 영어특기자교육과정 중 마지막일정으로 일주일간 해외연수과정이 있었다. 첫째딸이 3살, 둘째는 임신 6개월째. 그때 남편과 딸에게 쓴 편지를 지금까지 보여주지도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보여주기는 쑥스러워서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볼런지 안볼런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아마 보고도 못본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밤에 감상에 젖어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읽기 어려운 것처럼, 지금 읽으니 차마 못 읽을 편지로고.

 

사랑하는 당신께

하와이로 출발하는 월요일, 김해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당신과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요?

헤어질때는 꼭 울것만 같았는데, 분주히 헤어지느라 다행히 눈물은 보이지 않았었죠.

늘 같이 있고싶고,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당신.

헤어져 있는동안 당신은 어땠나요.

나는 당신이 몹시도 보고싶고 그리웠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뿐이구나. 그리고 당신을 통한 딸 현지라고 간절히 깨달았죠.

이제 다시는 당신을 떠나 있을 날은 없을 거예요.

당신께 더 잘하리라 다짐도 했어요.

지금은 마치 꿈과도 같은 집으로, 당신 곁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이에요.

저는 지금까지 이날 만큼 그렇게 간절히 무언가를 기다려 본 일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군요.

일주일 동안 어머님께 현지 맡겨놓고, 밥 챙겨 먹으러 간다고 미안한 마음으로 불편했을텐데, 정말정말 미안해요.

그러나 나도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느끼는 고통을 정말 당신께 다 말로 할 수가 없을것 같군요. 이제 집에 가면 지금까지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당신과 현지를 볼 일이 꿈만 같군요.

 

1996.  11.  1

호놀룰루발 비행기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딸 현지야.

이 못난 엄마가 다늦게 무슨 영어공부를 할거라고 하와이에 와서 보고싶은 너를 못보고, 이 못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너를 떼어논 가슴 아픔에 며칠을 울면서 잠을 설쳤다.

하와이의 좋은 풍경도 깨끗한 날씨도 아무것도 내겐 의미가 없고, 오직 너를 보고싶은 마음 뿐이었고 집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이제 다시는 너를 떠나 서로가 괴로운 일은 없도록 할께.

그저께 밤에는 가방에 넣어온 너의 사진을 보고는 통곡을 하였었다.

하와이가 내게는 꿈의 섬이 아니라 지옥같은 곳이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 네가 내옆에 없다는 것 뿐이었다.

현지야 부디 이 엄마를 용서하고 너를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다 할께.

앞으로 너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이번 하와이에서의 이 고통스런 일주일은 항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네가 내옆에 있는것 그것보다 행복한건 없으니까. 모든 순간들을 행복으로 알고 너를 위해 살아갈께. 하나님안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밝게 지혜롭게 자라가렴.

 

1996.  11.  1

호놀룰루발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