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온 집 옥상이 무척 넓다. 한 귀퉁이엔 전에 살던 분들이 마련해논 텃밭도 있다. 어머님은 우리가 이사하기 전부터 텃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셔서 갖가지 채소를 심을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계셨다.
우리가 이사한 그 주간에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긴 아버님은 근처 농산물 시장에 가셔서 여러 종류의 채소 모종과 거름을 사오셨다. 고추, 상추, 호박, 오이, 가지, 깻잎 등. 아직 이사 여독도 풀어지기 전에 채소 모종과 거름포대를 들고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야했다. 몇 달간 방치된 텃밭은 각종 풀로 뒤덮여 있었다. 어머님과 함께 풀을 뽑고 텃밭을 정리하면서 뒷짐지고 계시는 아버님께 들리지 않게 어머님 하시는 말씀
" 이 집 남자들은 어째 이런 일들은 하나도 할 줄 모른다. 가(아들이자 우리 남편)도 그렇고"
나는 땀을 흘리면서 그냥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맞장구 치면서 시아버지 흉을 볼 수 있겠는가, 시어머니 앞에서 그 아들 흉을 볼 수 있겠는가.
" 천만 다행이지. 니랑 내랑 어릴 때 해본 일이라 이렇게라도 할 수 있으니 "
다소 고되긴 하여도 어머님 칭찬에 힘이나서 후딱 저렇게 채소 모종을 심었다. 그후론 새벽기도 마치면 곧장 옥상으로 올라가서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일이 요즘 내겐 참 즐거운 일이 되었다. 저 채소 모종을 심고난 후엔 비가 자주 내려 그 또한 즐겁다.
어릴때 고향에서 부모님을 도와 많은 농사 일을 했었고 그 일이 고되고 힘든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도시에서 조그마한 텃밭에 소꼽놀이하듯 갖가지 채소들을 심어 물주고 길러서 식탁에 올리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여전히 남편과 아이들은 관심이 없고 나만 혼자 조석으로 보살피며 애정을 쏟고 있다. 잘 길러 놓으면 간간이 다니러 오시는 어머님이 또 보시고 얼마나 즐거워 하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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