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이사를 하게되면서 출퇴근 교통수단이 바뀌었다. 예전엔 10분정도 걸어서 지하철 한번이면 되었는데, 이번엔 큰 길까지 잠시 버스를 타고 좌석버스를 환승하여 한참을 가야 직장에 도착할 수 있다. 대충 한 시간정도는 걸린다.
처음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하여 여러가지를 시도하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일주일정도가 지나니 좌석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할 방법도 찾게 되었다. 먼저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예전에 남편이 사다 모아둔 성음의 클래식 테이프를 몇개 가방에 넣고 늘 그렇듯이 책도 챙겨 넣었다. 이사하랴 출퇴근에 방황하랴 한참 책을 못봤더니 낯설기조차 하다.
일단 좌석버스를 타면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다. 가장 편안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지난주엔 우연히 잡은 테이프가 아침에 듣고 가기에 딱 알맞은 곡이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본 분)의 플룻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가라 앉을래야 가라앉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약간 볼륨을 낮춰서 배경을 깔고 책을 꺼낸다. 한 시간정도 서다가다 하면서 도심지를 지나면 내가 내릴 장소에 도착한다. 이것이 내가 요즘 유일하게 누리는 문화생활이다.
바다가 펼쳐진 언덕위의 집에서 커피를 내리며 클래식을 고르진 않아도, 우아한 정장을 차려입고 로얄석 티켓을 사들고 연주회에 가진 못해도, 아침 저녁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내겐 참 편안하고 기분좋은 시간이며 공간이다. 가끔씩 눈을 식히기 위해 고개를 들면 빨간 장미들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어찌보면 초라한 나의 이러한 문화생활은 요즘 읽고있는 윌리엄 플로머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있는 구절에서 위로를 얻어본다.
'경건한 사람이 거짓된 세상의 기교나 교활함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고대인 가운데는 왕이나 철학자가 춤을 잘 추는 것을 비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이 육신적이고도 세상적인 일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간적인 방식이나 기교에 능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남편은 만날때마다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가자고 했다. 클래식이 주가되고 음료는 부차적인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늘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몰래 거금을 들여 클래식 음악 백과사전을 사기에 이르렀다. 그가 자주 얘기하는 곡들을 기억했다가 조사해볼 생각으로... 글쎄 이런 나의 행동은 상대방을 지극히 마음에 들어해서 관심을 사기위해 그럴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나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싶지않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요즘 클래식이 훨씬 좋다. 나이가 들면 다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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