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298

고향친구

작년 12월 친정 조카 결혼식에 갔다가 어릴적 고향친구들과 연락이 닿았다.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살던 동네는 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살수있도록 새고향을 옮겨 마련해 주었지만 우리집은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학교다니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키우며 정신없이 사느라 옛날 생각은 지우며 살았었다. 그후 세월이 지났으니 친구들도 전국에 다 흩어져 살고 있었다. 쉰을 넘기고 좀 여유가 생기니 연락 닿는 친구들 하나둘 불러들여 여남은 정도 단체 카톡에 모여있었다. 40년 만에 마주친 친구들은 그야마로 쉰을 넘긴 중년일 뿐이었다. 그 얼굴에서 숨은 그림 찾듯 어릴적 모습을 찾아내려 애썼다. 친구들 못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겠구나 돌아봐졌다. 그중에 한 남자 동기는 ..

폭염, 여름 그리고

한번 발효된 폭염경보가 자리를 차지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휴가 안가냐' 는 안부인사가 난무하지만 폭염때는 사무실이 최고다. 출근도 고달픈 면은 있다. 뚜벅이인 나는 버스, 지하철, 도보를 두루 거쳐야 한다. 잠시 걸어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 환승 후 십 분쯤 걸어 사무실에 도착한다. 버스 타기전 땀에 젖고 버스 타면 마른다. 지하철 환승하기 위해 좀 걸으면 또 젖고 지하철 타면 다시 마른다. 지하철을 내려 십 분쯤 걸으면 속옷이 거의 다 젖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크게 땀 흘릴 일은 없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땀 흘릴 일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시원한 곳에서 곧 마를 걸 알기에 참을 수 있다. 폭염으로 온 땅이 펄펄 끓지만 이 무더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을걸 알기에 우리는 견뎌낸다..

걷기

요즘 출퇴근길에 웬만하면 지하철 한 정거장 더 걷기를 하고있다. 숨가쁜 출퇴근 시간 20분 정도 더 들여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어느날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이상이 생겨 다리를 구부리는 동작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양반다리도 어려워서 노인들처럼 다리를 뻗고 앉아야 했다. 정형외과에서 여러 검사를 해보아도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작년에 부서를 옮긴 후 출퇴근 시간도 최소한으로 걷고, 점심시간과 화장실 갈 때 외엔 하루종일 앉아 일과 씨름하고 있었더니 그만 탈이 나고 만 것 같았다. 때마침 직장에서 워크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일 만이천보 이상 꾸준히 걷기를 완수한 직원들에게 상품도 지급한다. 내 의지 하나만으로는 쉽지 않을텐데 당근을 잘 주는..

세상 향한 글쓰기

직장에서 하루짜리 줌교육을 신청했다. 코로나 이후 줌교육이 활성화된 것 같다. 줌교육은 처음이다. 딸에게 일찌감치 노트북에 줌세팅을 부탁했다. 교육을 이렇게 설레며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강의명은 '세상 향한 글쓰기'. 세 분의 유명 작가가 강의를 한다. 남편 서재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책이 넘쳐서 바닥까지 점령한 정신없는 방인데, 내 뒷배경은 잘 정돈된 책꽂이 뿐이다. 감쪽같다. 마지막 강의인 강원국작가의 시간이었다. 강의 시작과 동시에 작가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더니 '책이 굉장히 많으시네요.' 한다. 깜짝 놀랐다. 채팅창에 남편 방이라고 쓰려는데 타자가 늦어 놓치고 말았다. 졸지에 책 엄청 많이 읽는 여자가 되었다. 강의는 아주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다. 앎이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나의 코로나 투병기

직장에 내가 속한 부서만 해도 직원들 반 이상이 코로나에 걸렸었다. 일 주일의 격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료들의 표정은 오랫만의 긴 휴식 때문인지 다들 멀끔해 보였다. 공식적인 휴식이 때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으리라. 지금은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없다. 서울에 있는 큰 딸이 잠시 다녀갔다. 아직은 선선한 봄밤에 친구와 만나 광안리 바닷가를 여름처럼 돌아다녔다며 감기약을 먹었다. 딸이 돌아 가고 나도 몸살기가 있어서 약을 먹었다. 그 다음 날은 더 상태가 좋지 않아 내과를 찾아 링거를 맞았다.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하라 하여 했더니 양성이었다. 바로 딸에게 연락하였더니, 자기도 방금 양성 확인하고 나오는 중이란다. "엄마 미안 ㅠㅠ..."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갇히게..

평생 기억되는 선물

나는 퀴즈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해서 그날도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하였다. 연배가 나보다 좀 더 되어 보이는 남자 출연자가 있었다. 이마가 정수리까지 확장된 그는 문제를 곧잘 맞추어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방송 도중에 초등학교 때 친구를 찾고 싶다는 사연까지 소개하며 방송덕을 톡톡히 본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에 얽힌 이야기로, 가난한 형편에 본인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 친구가 향나무 향기가 나는 연필 1다스를 선물로 사주었고 그 귀한 선물을 선뜻 건네준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고 한다. 중학교까지 같이 학교를 다니고 헤어진 후 지금까지 볼 수 없었고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만날 수가 없더란다. 그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게 못내 아쉽..

비 온 뒤에

며칠 비가 많이 내렸다. 출근길에 불어난 물이 시원하다. 흙탕물과 맑은물 사이의 약간 푸르스름한 물빛깔이 어릴적 고향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여름이면 한 두 차례 무지막지한 비가 쏟아졌다. 비가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방과 마루를 오가며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비내리는 며칠동안 적막한 시간을 보낸 후 해가 쨍하고 뜨면 밖으로 달려나간다. 우리가 다니던 골목엔 새로운 개울이 생겼고, 빨래터가 있던 시냇물은 강이 되었다. 늘 내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니 반가운 마음에 겁없이 달려들기도 한다. 그랬다간 예상치못한 물살에 넘어지기도 하고 휩쓸려가기 일쑤다. 그와중에 물살이 뺏어간 신발 한 짝에 가슴 아픈 적이 많았다. 차마 버리지 못한 남은 한 짝이 집집마다 툇마루 아래 뒹굴곤 했다. 비가 온 직후엔 산골짜기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아침 스트레칭

아침 스트레칭을 시작한지 만 7년이 넘었다. 그간 옮긴 부서만 네 곳이다. 부서를 옮길 때마다 나만의 은밀한 스트레칭 공간을 물색한다. 업무 시작 전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팔을 들어올리고 다리를 늘이는 동작이 누군가의 눈에 띄면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나름 BGM도 흐르게 하려면 공간 확보는 필수이다. 지금 근무하는 부서로 옮겨서도 나름 적당한 공간을 찾았다. 그날도 스트레칭을 마치고 약간의 상기된 얼굴로 나오던 중 과장님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부서 직원들과 같이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신다. 메신저를 통해 동참할 직원을 파악하였고 마흔 이상과 여직원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대여섯명이 구성되었다. 스트레칭 시작은 업무시작 20분 전, 장소는 과장실이다. BGM은 자연스럽게 막내..

쉰은 고달프다

육체는 평생토록 성실히 자기의 소임을 다했노라고 이젠 자신의 존재를 좀 알아주라고 아우성친다. 더러는 강력하게, 또 더러는 소심하게... 그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다 듣기엔 버거워 옛다... ㅈㅎㅇㄱ 물리치료실 침대에 눕혀 막무가내로 달래본다. 잠시 수그러드는 듯하나 돌아서면 또 소란하다. 정신은 고고한 자신의 오랜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육체의 아우성에도 늘 똑같이 지시를 내린다. 육체가 고지식한건지 정신이 그런건지 잘 알 수가 없다. 육체와 정신의 불협화음에 쉰은 오늘도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