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즐거운책읽기

THE SHACK(오두막) by 윌리엄 폴 영

안동꿈 2010. 8. 27. 18:29

 어느날 후배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전해준다. 자신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알고보니 대단한 베스트셀러다.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클라이막스나 흥미, 갈등 그런 요소들은 많지 않은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을까.

 

현대인들이 매일의 삶에서 크든 작든 끊임없이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거대한 슬픔'에 쌓인 주인공이 그 고통의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통해 큰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은 단순히 자신이 생각을 바꾸어 먹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주인공 맥이 사랑하는 막내딸을 연쇄 유아살해범에게 잃고, 외딴 오두막에서 딸의 옷과 핏자국으로 살해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온가족이 거대한 슬픔과 고통중에 지내던 중 아내 낸이 하나님을 부르는 명칭인 '파파'로부터 그 오두막으로의 초청장을 받게된다. 

 

우리는 거대한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고통의 근원 앞에 서기는 몹시도 두려워 한다. 어쩌면 자신이 고통의 근원의 실제 부피보다 더 엄청난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을지라도 그렇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자신을 알게 된다'라고 했다. 맥은 하나님과의 긴 대화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고, 인간을, 자신을, 자신의 슬픔의 본질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인격으로는 도저히 요지부동이던 그 거대한 슬픔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우리가 이 땅에서 느끼고 당하는 모든 슬픔과 고통이 우리에게는 견고한 진실 같지만, 그건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 진정한 실체는 그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그 오두막을 찾았을 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맥이 하나님인줄 알지도 못하였을 때, 나는 그의 거대한 슬픔과 하나님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간절히 찾은 그 사실앞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는 아직 위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아직 하나님을 이 고통을 방관한 자로 반항중에 있었지만 나는 위로되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현실의 고통속에 패잔병처럼 상처 입은채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저녁이면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남아있는 슬픔과 고통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보고 위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길지 않은 삶 가운데서, 그러나 하루라는 그 짧은 시간중에도 수없이 많은 물리적, 정신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번의 사고 앞에 우리는 완전히 망가져서 살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만드신 그 분도, 또한 우리 자신도.

 

우리가 평생 상처없이, 아무 고통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도사리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 인생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그 분은 상처난 우리를 고치시기를 원하신다. 그분 앞에서 우리를 고치고 회복하여서 다시 생의 한가운데 나가기를 원하실 것이다. 우리 자신 또한 그걸 원하리라. 그런데 우리 스스로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하나님 안에서만 완전한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