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권의 루이스 책을 읽다.
스크루테이프라는 악마가 그의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책이다.
스크루테이프는 근본적으로 악을 추구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인간들에 대해 가차없는 독설로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입을 통해 듣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신학자들의 어떤 증거보다도 더 진실되고 절실하게 우리에게 증언되는것 같다.
루이스가 이 책의 1961년판 서문에 밝힌대로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악마들을 비교하면서, 장엄한 풍모에 훌륭한 시까지 구사하는 밀턴의 악마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미친 해로움, 괴테의 집요하고도 병적으로 자아에 집착하는 파우스트와 대조적으로 유머있고 세련되며 지각 있고 융통성 있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진짜 위험한 이미지라고 밝히며 자신은 이 책을 쓸 때 그러한 점을 특히 주의하여 악마를 그리려 했노라고 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 모든 면에서 완전하였으나 적어도 내게는 악마의 입을 통해 전달된 증언이 너무나 진실되고 믿을만하여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나에게 각인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오직 주인공인 악마의 이미지 때문에 허황된 얘기, 진실되지 않은 얘기를 내뱉는다면 이 책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이 놀라운 책의 일부를 옮겨봄으로서 우리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통찰력을 맛볼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원수는 악마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이고, 환자는 악마가 맡은 '사람'이다.
어떤 쾌락이든 건전하고 정상적이며 충만한 형태로 취급하는 건 어떤 점에서 원수를 유리하게 하는 짓임을 잊지말거라. 우리가 쾌락을 사용해 수많은 영혼들을 포획해왔다는건 나도 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쾌락은 원수의 발명품이지 우리 발명품이 아니지 않느냐? 원수는 쾌락을 만들었지만, 우린 지금껏 수없이 많은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쾌락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원수가 만든 쾌락들을 인간들이 즐기게 하되, 단 원수가 금지된 때에, 원수가 금지한 방식과 수준으로 즐기도록 유인하는게 고작이지.
원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의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미래에 잔뜩 가위눌려 있는 인간, 이 땅에 금방이라도 천국이나 지옥이 임할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 자기는 생전에 보지도 못할 계획의 성패 여부에 믿음을 거는 인간이 최고지.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 이렇게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의식은 자기의 정당한 요구가 거절당했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거야. 따라서 네 환자가 삶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유도하면 할수록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횟수가 늘어날 테고, 결국에는 성질도 나빠질 게다. 이제 너도 알아챘겠지만,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다.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그런데 인간은 시간 중에서 단 한 순간도 만들어 내거나 붙들어 둘 수 없다. 시간이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 시간이 저희들 것이라면 해나 달도 저희들 소지품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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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겸손'의 정의를 옮겨 적으며 이 독후감을 마무리하려 한다.
겸손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못난이라고 믿으려고 애쓰며, 명석한 남자가 스스로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내 재능의 가치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수준보다 낮게 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웃이 가진 재능을 볼 때와 똑같이, 해뜨는 광경이나 코끼리나 폭포수를 볼 때와 똑같이, 자신의 재능 또한 솔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다. 그리고 '나의 가치'라는 주제에 마음을 두지 않는것,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 겸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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