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 갑자기 남편에게서 후배부부들과 함께 집에 오겠다고 알려왔다. 부담없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갑작스럽게 저녁을 준비해야하니 슬쩍 짜증이 났다. 그래도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집에 손님이 자주 오는 것의 유익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저녁을 준비하려고 했다.
낮에 먹던 몇 가지 반찬들과 한 두가지 새로운 반찬들을 곁들여 저녁상을 차려내니, 아직 초보 주부들의 살림 솜씨로 각자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탁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한 그들이기에 저녁식탁은 대환영을 받았다. 저녁식사후 자연스럽게 신혼부부들의 식탁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한지 1년 남짓된 한 부부는 신혼초 아내가 대파 하나를 썰면서 그 간격을 맞춘다고 20여분을 소요하는걸 보고 기겁했다고. 옆에서 보다못하여 자기가 썰어 주겠다고 시범을 보였다가 간격이 안맞다고 엄청 핀잔을 받았다나...
아내는 또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마늘을 양념으로 넣을때 레시피에 한 숟가락으로 되어 있는걸 마음대로 해석하여 차숟가락으로 반만 넣는다고, 전라도 남편(결혼전 어머니가 해주신 그 전라도의 맛깔스런 음식을 오매불망 못잊고 있는)은 우리에게 거의 울먹이며 하소연을 한다.
또한 아내는 식사때 반찬마다 일일 섭취량을 정하여 접시에 담아내놓고 그걸 다 안먹거나 어느날은 입맛이 당겨서 더 먹으려고 하면 '왜 다 안먹느냐? 맛이 없느냐?...하루 섭취량이 넘었으니 더줄 수 없다' 그 정도로 통제를 하니, 남편은 자기가 무슨 기계냐고...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는 정성을 다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식탁을 준비하는데 맛있다는 소리를 해주지 않는다고... 입맛에 맞지 않는데 계속 맛있다고 하면 음식이 개선되지 않는 법이라고 다 당신을 위해서 그런거라고 남편이 끼어드니, 그러면 집에 놀러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왜 그렇느냐고, 그건 예의상 하는 소리지 않느냐고...그 사람들이야 그날만 참고 가면 그만이지만 자기는 평생 아내가 해주는 음식먹고 살아야되는데 자신의 행동은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고...
이 정도 되니,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는 사랑싸움인지, 진짜다툼인지 좀 헷갈리긴 했다. 남편이 얘기하면 그게 맞는것 같고, 아내가 얘기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어쨌든 풋내기 부부들의 얘기가 그들에게는 심각한 것 같은데, 우리에게는 귀엽기만 하다.
이제 결혼한지 두 달된 다른 부부는 이제껏 서로 다른 생활환경에서 살아오면서 몸에 벤 습관들이 상대방의 것과 부딪치면서 적응해 가는 중인것 같았다.
아내는 친정에서 모든 식구들이 9시 이후로는 음식물을 전혀 입에 데지 않고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남편은 11시가 넘어서도 집에 남아있는 먹을거리들을 먹어치우니 아내가 기겁을 하는 것이다. 어느날은 남편 친구들이 몰려와서 밤늦도록 집에 갈 생각을 않고, 12시가 다 되었는데 라면을 삶아 먹겠다고 하더란다. 아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친구들이 돌아간 후에 급기야 결혼후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밤에도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아내가 드러내놓고 싫어하니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런게 아니냐고 항의하고, 아내는 밤늦게 그렇게 먹으면 건강에 정말 좋지 않으니 남편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풋내기 신혼부부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자신이 이제껏 알고 있는 지식으로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데, 서로 살아온 생활습관과 가치가 다르니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사랑이 깊은 강이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작은 다툼 조차도 새로운 사랑의 향기를 첨가할 뿐이라...그들 얘기를 듣고 있으니 시간 가는줄 몰랐다. 얘기하는게 너무 귀여워서 웃음만 나왔다. 우리 남편도 그랬으리라. 우린 그런 아기자기한 사랑싸움도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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