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젊은날 가슴 뛰며 읽었던 김태길교수님의 '좋은글'중에서

안동꿈 2009. 6. 26. 20:38

(생략) 나는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지를 말할 수 있는 조예에 이르지 못하였다. 다만 내가 어떤 수필을 좋아하는지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보다도 좋아하지 않는 수필을 말하기는 더욱 쉬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좋은 수필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수필에는 반드시 정서가 담뿍 담겨 있어야 한다든지 또는 반드시 해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이 편벽된 듯하여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음에 내가 어떤 수필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내 개인의 기호를 말할 뿐이요, 그 밖의 것들은 좋지 않다는 뜻은 전혀 담지 않았다.

 나는 필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난 수필을 좋아한다. 생면부지의 필자이지만 글을 읽으면 그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한 수필이 좋다. 흔히 남들이 한 말을 또 한번 늘어 놓는 것 같은 싱거운 글은 끝까지 읽기가 지루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거나 자아를 과장한 글에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 전에는 ‘수필의 본질은 자아의 표현’이라는 말에 잘못 이끌려 의식적으로 자아를 강조한 글을 좋아한 때도 있었으나, 요즈음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글에는 반드시 진실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세를 부리거나 솔직하지 못하여 마치 자기는 이미 인격의 완성 단계에 도달한 듯 위선적인 글은 읽기에 역겹다. 대단치도 않은 학식을 가지고 크게 많이 아는 양 현학적인 글도 비위에 거슬린다.

 민족의 지도자로 자처하면서 설교를 늘어놓기에 바쁜 글은 더욱 호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쓴 것 가운데 그런 것이 발견될 때는 당장 책을 덮어 버린다. 글에 교훈을 담는 것이 나쁘다든 뜻은 아니다. 다만 교훈은 간접적인 것이 바람직하며 마지막 판단은 독자 자신이 하도록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나는 생각이 깊은 글을 좋아한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독자와 함께 깊이 생각하는 자세로 쓰인 글에 호감이 간다.

 우리가 흔히 당하기 쉬운 삶의 슬픔 또는 괴로움을 자기의 체험을 통해 진실하게 그린 글, 특히 슬픔이나 괴로움을 이겨 나가고자 하는 용기를 조심성 있게 보여주는 글에 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게 감상적이거나 자기도취에 빠진 글에 대하여는 상이 찌푸려진다.

 품위 있는 해학을 여기저기 엮어 놓은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흔쾌하다. 자기 자신의 실패나 슬픔을 가벼운 웃음으로 처리한 마음의 여유를 읽는 것도 기쁘거니와, 각박하고 부조리한 세태를 동정 섞인 유머로 둥글게 나무라는 독기 가신 비판 정신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저속한 익살이나 가시 돋친 냉소에 대하여는 저항을 금치 못한다. 해학의 극치는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되 자애의 정신을 잃지 않는 건강 속에서 발견된다. 남이 웃음의 대상이 될 경우에는 특히 따뜻한 사랑으로 그 웃음을 배상할 때 비로소 유머의 경지에 도달한다.

 나는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 산문시라고 불러도 좋을 그러한 글에는 현대사에 흔히 보이는 난해성도 없고 자기 도취에 빠진 이류 문필의 지루함도 없다.

 그러나 지나친 억제로 인공이 압도하며 분재와 같은 인상이 강한 글을 최상급으로 찬양하는 견해에 대하여는 회의를 느낀다. 소재에 따라서는 분재를 다듬는 수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적합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연림에 가까운 광활한 정원의 미를 따르지 못한다.

 나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글을 좋아한다. 가을 하늘처럼 맑고 진달래처럼 산뜻한 글로 좋지만, 심산유곡을 원경으로 그린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것 같은 글은 더욱 매혹적이다. 현실이 각박하면 각박할수록 마음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꿈의 언어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생각에 연막을 쳐서 굉장한 사상을 가장 하는 속임수는 환각제 못지않은 죄악이라고 믿는다. 내가 여기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글’이라 함은, 무당의 굿과 같은 모호한 언어의 유희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진실을 지향하는 구도자다운 정신의 영감 서린 분장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평이한 문장의 글을 좋아한다. 쉬운 말로 쓸 수 있는 내용을 굳이 난잡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딘지 현학적인 것 같아서 정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풀어쓰기 위해서 말수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문장은 평이하고도 간결한 것이 상품이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것 같으나 새겨 읽으면 인품의 세련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글이 좋다. 겉으로 재치가 흐르는 글보다는 안으로 덕성을 숨긴 글이 더욱 값져 보인다.

 표현의 아름다움과 사상의 심원함을 아울러 가진 글이라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두 가지가 다 충족되어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사상에는 새로운 점이 없더라도 표현이 참신하면 그런 대로 찬양할 일이요, 비록 문장에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사상에 심오할 경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글이 많이 읽히지 않는 세상인데 글 이야기를 썼다. 별로 관심거리가 될 성 싶지도 않은 ‘글에 관한 글’을 쓴 것은, 좋은 글이 많이 쓰이고 또 많이 읽히는 풍토가 되기를 염원하는 조그만 마음에서이다. 수필의 전문가도 못 되면서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문외한인 주제에 수필 이야기를 쓴 것은 전문가 못지않게 수필을 사랑하는 마음이 분수를 잊게 한 때문일 것이다. (생략)

 

대학 1학년때 김태길 교수님의 수필집 "고독한 성주들" 에 나오는 수필중 한편인 이 "좋은글"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가진 나에게는 값진 보석을 손에 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서 간직하고 싶은 내용을 노트에 베껴 적었고 그 누런 종이를 20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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