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러가지로 우리집을 챙겨주시는 전에 다니던 교회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치 담았습니까?"
"아니요, 김장김치가 아직도 많이 있어서요..."
"장마 오기전에 김치 담아서 김장할때까지 먹는거에요. 장마오면 배추값이 올라서 김치 못담아요."
그러면서 배추를 얼마나 절여서 언제 건져 놓으면 자기가 양념을 준비하여 갈테니까 김치를 담자고 한다. 시간을 쪼개어 농산물 시장에가서 배추를 스무포기 남짓하게 샀다. 포기가 크고,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사등분 하여 바로 소금만 절이면 될 정도의 배추가 8개 묶음에 5천원이다. 만원 남짓 주니 배추가 준비되었다. 이렇게 싼 배추를 이토록 많이 구입해본 기억이 없다. 배추를 사면서 아주머니께 김장때도 아닌데, 요즘도 김치를 이렇게 많이 담느냐고 물으니,
"그럼. 야무진 주부들은 장마가 오기전에 각종 김치도 담아놓고, 저장해 놓을 야채들도 손질하여 보관하고, 양념들도 종류대로 손질하여 넣어두지. 그러면 장마가 와도 끄떡없지. 장마오고 나면 채소값은 금값이야."
그 얘기를 들으니, 마흔이 넘도록 그 사실도 모르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채소가 비싸면 채소는 조금 먹고, 생선이 비싸면 야채먹고, 가끔 비싸도 아주 먹고 싶은것 있으면 용기내서 사먹고...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야무진 주부들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들에게 마구 존경심이 일어났다.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야말로 가정관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그러면서 또한 부러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늘 바쁘게 쫓겨 사는 것이 가족들에게도 참 불편한 일일테니까. 요즘은 돈이면 다 해결된다면서 돈돈한다. 가정에서도 돈돈하면 그보다 삭막한 일이 있을까.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는것 만큼 멋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정작 감동받은 일들을 돌아보면 돈으로 했던 일이 아니었다는걸 알 수 있다.
김치하기 전날 청년편에 양념재료들을 보내 주셨다. 어디 다녀올 데가 있다고 미리 양념을 만들라고 한다. 새벽에 배추를 건져놓고, 다시물을 내어 찹쌀풀을 풀어서 홍고추, 마늘, 생강 간 것, 액젓과 고추가루를 함께 넣어 버무리던 중 점심때가 다 되었다. 몇가지 재료를 더 준비하기 위해 시장 갔을때 사다논 싱싱한 고등어를 가지고 고등어 조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야할 일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여 버무리던 양념을 한 숟가락 떠서 고등어 조림에 넣고 매실액을 조금 넣고 물을 부어 끓였더니, 식구들이 감동을 한다. 너무 맛있단다. 평소 고등어 조림할때 갖은 양념들을 넣게 된다. 각각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는 여러 종류의 양념 들을 챙겨서 넣다보면 손만 바쁘고 정작 맛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생선조림 양념이 내게는 대박이었다. 미리 준비하여 냉동실에 넣어놓고 꺼내서 사용하면 무척 간편할 것이다. 아마 야무진 주부들이야 더 놀라운 비법들이 수두룩 하겠지만 털팔이 아줌마인 나는 이 발견(거의 말명 수준)이 대단한 것이어서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는 동료들에게 열심히 전달하였다.
어째 마지막 부분에서는 야무진 주부 이야기가 아니고, 털팔이 주부의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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