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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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리고 나

중학교 입학하는 시골 소녀의 각오

안동꿈 2012. 3. 7. 18:38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외아들을 둔 직장 동료는 자기가 더 가슴이 떨린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에 돌입해야 하는데, 아들이 잘 해낼지, 엄마로서도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유 경험자로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조언을 좀 해주었다. 

 

"조금만 지나면 적응돼. 고등학교 2년간 아마 많이 체념하게 될거야."

 

 

  요즘은 다들 초등학교때부터 '공부, 공부...'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어릴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참 부지런히 놀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고등학교에 진학할때도 시험을 치루었기 때문인지 중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30년전 나의 중학교 진학기는 지금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초등학교때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편지쓰기에 할애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셔서 편지를 정성껏 써서 보냈다. 답장이 오는게 재미있어서 그 학교 이름으로 나와 같은반 같은 번호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정말 재미있었다. 내 속에 숨어있던 허영심이 슬슬 발동하여 그 반 반장에게 편지를 썼다. 또 답장이 왔다. 답장이 즐거운 여러가지 이유에는 나의 글이 먹혀 들었다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만으로 호감을 일으켰다는 자부심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나는 전학간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그 학교의 다른 친구들과도 서슴없이 연결하여 연락하였다. 나는 정말 문어발처럼, 내가 편지를 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댔다. 답장이 오면 곧바로 또 답장을 썼다. 나중에는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질투하는 내용의 편지가 오기도 했다. '그 친구는 어떤 부분에서 좀 안 좋으니 편지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6학년이 되었을 때는 열 명이 훨씬 넘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그렇게 화려한 편지 연애에 빠져있던 나는 중학교 진학을 코 앞에 둔 겨울방학 중에 그 모든 친구들에게 일제히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야 할텐데, 편지 주고 받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이제 그만 편지하자... 등등'  

 

그렇게 내 중학교 입성기는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했고, 대단한 각오를 갖고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서 생활해 보니 별 것 아니었고 그때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나 생각하며 쑥스러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