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할 뿐이다'
어느 문장가의 언어적 유희일까.
아니, 어쩌면 그동안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저 문장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천인공노할 사건 앞에서 어디 화풀이 할데 없는 나에게는 저 문장이 화풀이 대상이 되고 있다.
외면하고 싶지만 온 몸과 마음을 누르는 무거움과 우울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혼자 터벅터벅 교회 예배당에 가서 앉았다. 기도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앉아있는데 눈물이 났다. 그 어린 딸이 불쌍하여 자꾸 눈물이 나서 눈이 부었다. 그 어린 것이 아무 잘못도 없이 당한 상처와 고통 앞에서 내 눈물은 그저 나의 무거운 마음을 풀어주는,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행동일 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어찌 이리 되었을까.
우리는 모두 공범자가 아닐까
많이 가진자가 덜 나누었기 때문에.
믿는자들이 자기 몫의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운자가 그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갈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
더 좋은 세상이 될 수는 있는 걸까.
그 딸이 가난하지만, 큰 상처를 입었지만, 지금은 희망을 보기 어렵지만
오프라 윈프리같은 인물이 될 기대만큼은 가질 수 있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있는게 무엇인지, 우리 필요를 위해 쓰고 남는게 무엇인지 살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주위에 사랑의 마음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무 불순물이 끼어들지 않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행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주위에 전파되고 이어져 갈 것이다.
나는 과연 답답한 이상주의자인걸까...
- 나주 성폭행 사건에 부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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