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옆 계의 여자 계장님이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시면서 통화를 하셨다. 안들을래야 안들을 수가 없어서 듣게된 내용인즉,
나이드신 아버지께 계좌번호를 불러드리는데 못 알아들으셔서 고생고생 끝에 아버지께서 받아 적으시고 맞는지 확인하는데까지 8분이나 걸린 사연이다.
그런데 정작 놀란 건 8분여를 통화하는중 이 젊은 여자 계장님이 목소리톤 한번 바뀌는 것도 없이 차분히 통화를 마치는 것이었다. 중간중간 환기를 위해 '아버지' 라고 반복하여 부르면서 차분히 대화하시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가끔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있다.
남들에게는 웬만하면 참고 화를 잘 안내는데 가족에게 더 자주 화를 내는 것 같다.
아마 밖에서는 늘 방어자세로 자신을 단속하며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있다가 가족들에게는 무방비상태에서 조그마한 일에도 불쑥 화를 내게 되는 것 같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불편한 일을 행할때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응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가족중에도 시부모님은 늘 조심스럽고 긴장상태에서 대하게 된다.
우리 시부모님은 요즘 자식들 다 분가시키고 두 분만 따로 근교에 살고계신다. 현직에서 은퇴하시니 바쁜 일도 없으시고, 접하는 뉴스는 늘 흉흉한 소식이니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자주 하신다. 특히 우리는 유일한 아들 가정이니 딸들 식구들 보다 더 챙기시는 것 같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집에 다 들어왔는지, 다 안 들어왔으면 조금 있다가 또 전화를 하여 들어온 여부를 확인하시고 안심이 될때까지 하시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자식들 생각하는 부모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저녁에 돌아오면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다. 밥먹다가도, 설겆이 하다가도, 씻다가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으러 가야하니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다.
그렇다고 걱정마시고 전화하지 마시라는 얘기를 할 수도 없다. 하루중 저녁에 식구들에게 전화를 하는게 낙이시니 그것을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물으시는대로 묵묵히 대답만 할 뿐...
부모님이라고 항상 옳겠는가
나이가 드시면 기력도 기억도 쇠하여지니 젊은 자식들의 편리하고 합리적인 생각에는 번거로운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릴적에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합리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도 거두신 것, 챙기신 것, 사랑하신 것...
이제는 우리가 그걸 기억하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부모님이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릴적엔 우리가 옳은 적이 없었다.
꼭 무엇을 받았으니 드린다는 논리라기 보다는 화가 날때, 짜증이 날때 그걸 한번 기억해 보자는 것이다.
그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한결 차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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