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 아버지는 도회지로 돈을 벌러 나가셨다.
고향에는 걸음을 못 걸으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우리 4남매가 남겨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외아들을 먼 타지에 보내놓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손녀인 저에게 편지를 받아 적으라고 하셨다.
'아버님 전상서' 로 시작되는 편지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딸의 편지 형식을 갖췄지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였다. 지금은 '아버님 전상서'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아들은 별 일이 없는지, 건강한지 물어봤을 것이고 이러저러한 고향의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할아버지가 불러주신 '아버님 전상서' 외에 스스로 아버지께 편지를 쓴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얼굴도 모르는 낯선 학교의 친구들과 수많은 펜팔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나 만나 보게되는 아버지께 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드리지 못한 게 이제야 깨달아진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할아버지가 편지를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스스로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불러주신 '아버님전상서' 보다 딸이 마음을 담아 '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라고 부친 편지를 받아보고 싶으셨을 텐데...
딸의 필체외에 편지글의 어디에도 숨겨져있지 않은 딸의 속마음을 아버지는 알고 싶지 않으셨을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가장이라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죽도록 일만 할줄 아셨지 아버지로서의 사랑도 기쁨도 전혀 표현할 줄 몰랐고, 술과 노름으로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자식에게 여과없이 드러낼 때도 있었던 자신을, 그래도 아버지로서 사랑하며 그리워하고 있을 딸을 기대하지 않으셨을까...
엄마와 달리 꿈에서도 잘 뵙지 못하는 아버지인데, 삼십여년 전의 일이 문득 생각나는건 왜일까. 다른 세상에 있지만, 지금의 그리움으로라도 나는 용서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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