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아버지 흉을 담은 글을 투정처럼 써서 포스팅 한 적이 있다. 그 직후 평소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 시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여 몇 가지 검사를 받으시던 중 갑자기 위급한 상태가 되셨다. 나는 무엇보다 나의 그 글이 마음에 걸려 얼른 글을 내리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아버님은 큰 어려움 없이 검사 결과도 별 이상없이 퇴원하실 수 있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여느때보다 길기도 하고, 나이가 든 탓인지 매년 하는 명절 치레가 부담스러워 그 마음을 담아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였다. 그 후에 시댁에 가기 전부터 괜히 남편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게 되었다. 짜증을 내면서도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조성한 무거운 분위기로 다들 침묵 속에 시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게 잠시 불편한 마음이 떠오를 때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함으로서 모호하던 불편함을 확정 짓게 되고, 그 후론 그 확정된 불편함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았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모호하던 불편함을 나는 굳이 끄집어 내어 내 앞에 갖다 놓고 그게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끌어 가도록 한 것 같았다. 문득 이 마음이 친정 식구들이 모이는 추석 연휴 마지막날까지 가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어 얼른 글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 시댁으로 가는 길이니 당장 글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불만스런 마음에 끌려 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먹고 우선 남편과 애들의 굳은 마음도 풀어 보려고 애를 쓰고, 시댁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하여 나름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다. 나를 무방비 상태로 두지 않고 마음을 단속하며 생활하니 염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쓴 글을 내리지는 않고 여기까지 왔다. 그 사이에 위태로운 상황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평소 같으면 그 부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독 나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글로서 표현하거나 다짐한 것이 우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남다른 기억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면소재지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시내에 나와서 자취를 해야했다. 우물안 개구리로 자란 나는 고등학교 입학 성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교등수가 세자리 숫자였다. 비록 전교생이 육백여명이나 되긴 했지만, 중학교때 비하여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성적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작은 수첩을 하나 마련하여 1학년 나의 목표 등수를 적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1학년 마칠때쯤 그 목표를 훌쩍 넘는 결과에 도달한 걸 알았다. 나는 신이나서 새해가 시작되는 날, 2학년 목표 등수를 다소 무리하게 기록을 하였고 2학년 마칠 때쯤 나는 그 목표 등수를 충분히 달성한 걸 알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글은 말 보다 더 위력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글에 대해 좀 더 신중해짐으로서 오히려 글로 인해 더 성취감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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