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카톡.
퇴직하신 직장 선배님이 아침마다 건네는 인사다.
그날 아침엔 시가 내게로 훅 들어왔다.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읽고 또 읽고...그 시가 내게 수없이 말을 건다.
시인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그의 시들이 참 따뜻하다.
겸손한 옷차림을 하고 나와서
스산한 가을 저녁같은 인생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
우린 언제쯤 저런 따뜻한 시를 쓸 수 있을까.
아니, 어느 세상에 있으면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종일 그의 시가 나를 붙든다.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시 파는 사람
이상국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것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년에 열 편쯤 팔면 잘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이 장사에도 때로는 유행이 있어
요즘은 절간 이야기나 물푸레나무 혹은
하늘의 별을 섞어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서울에서 주문 오기도 한다
보통은 시골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긴 해도
말이 그렇지 떼이기 일쑤다
그래도 그것으로 자동차의 기름도 사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하는데
가끔 장부를 펴놓고 수지를 따져보는 날이면
세상이 허술한게 고마워서 혼자 웃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 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자두
이상국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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