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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책읽기

[앵무새 죽이기]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진리를 지키다.

안동꿈 2016. 6. 29. 22:16

1930년대 쯤 미국의 메이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소녀 스카웃이 배워가는 삶이 여기에 있다. 스카웃은 두 살에 엄마를 잃고 변호사인 아빠와 네 살 많은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한창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할 시기인 이들 남매는 누구나 그랬음직한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을 저지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세상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웃집 부 래들리 아저씨를 가장 두려워하면서 그 공포의 대상을 대면하겠다는 무모한 용기를 내며 한 밤중에 그 집에 처 들어가기도 하고, 항상 늙고 불편한 모습을 한 채 듣기 싫은 말로 충고하는 듀보스 할머니가 아빠를 모욕하는 말에 무례하게 대들다가 아빠로부터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는 벌칙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부 래들리 아저씨가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증거들을 계속 만나게 되기도 하고, 듀보스 할머니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다 되었을 때에 엄숙한 태도로 성실하고 용기 있는 실천을 하셨던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아빠 애티커스 변호사는 아이들 앞에서 말과 생활의 일치를 통해 삶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앵무새를 죽이지 마라. 그 새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흑인들을 괴롭히는 백인들은 그들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사람이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배운 삶의 보편적인 진리들이 거침없이 파괴되는 삶의 현장 속에 이 가정은 놓이게 된다.

 

백인 여자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톰 로빈슨이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애티커스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대로 톰의 변호를 맡는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아빠와 아이들까지 엄청난 고통과 모욕을 준다. 결국 톰의 결벽이 확실한데도 유죄로 결정되고 톰은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변호사가 재판과정에서 밝힌 대로 톰이 아니라 상대 백인 여자 메이엘라가 오히려 성추행 가해자인 것이 명백히 밝혀지면서 메이엘라의 아버지 유얼은 수치와 모욕을 참지 못하고 변호사와 아이들을 죽이려고 호심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아이들이 목숨을 잃을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 래들리가 그들을 구하게 된다.

 

진리는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는 그야말로 인쇄된 문장에서나 보았을 법한 진리가 변호사 애티커스에게서는 지켜지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유산이 아이들에게도 이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은 채 막연히 악으로, 멸시의 대상으로 치부해 버린 것들을 선입견 없이 대함으로 그것의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기적을 날마다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이 이미 결론 지어버린 판단기준 앞에 다시금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깊이 생각하며 파고들어 나만의 결론을 찾아내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마음이 굳어지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서. 나와 같은 마음이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앵무새 죽이기는 진리를 쫓아가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큰 용기와 믿음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율 등을 볼 때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적인 가치와 진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점점 더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이익에 더 열광하는 것을 직면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정의를 볼 때 대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대체로 정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고 선택하는 것에 대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 진리를 추구하고 갈망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