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는 어느날 시뻘건 고깃덩어리 속에서 길을 잃고, 그 피묻은 날고기를 먹으며 온 몸에 피를 묻히는 끔찍한 꿈을 꾼 후에 전혀 고기를 입에 대지 못한다. 그로 인해 정상적일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은 그녀를 버린다.
그녀의 형부는 아내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묘하게 흔들린다. 예술가인 형부는 어느 날 영혜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에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을 얻는다. 그는 영혜의 나체에 꽃을 페인팅한 후 비디오작품을 완성하고, 그 꽃을 너무나 좋아하는 영혜가 꽃이 그려진 몸과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린 후 영혜와 관계를 갖는다. 이 광경을 목격한 언니 인혜는 남편과 헤어지고, 동생은 정신병원에 보낸다.
인혜는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의 병원비를 대고 정기적으로 찾아가 돌본다. 그러나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가서 억지로 먹여보기도 하고 동생의 회복을 위해 온갖 애를 써보지만, 이젠 어떤 약도 음식도 결사적으로 거부하며 오직 죽음으로만 향해 가는 동생을 막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작품처럼 내용이 이어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채식주의자 영혜의 모습이 무척 낯설고 두렵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영혜는 어릴 때 자신을 문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 입에 거품을 물고 죽을 때까지 몰고 다니며, 그렇게 해야만 고기가 가장 맛있어 진다고 하는 잔인한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수시로 당하는 아버지의 손찌검과 그 폭력에 대한 속수무책의 상황을 겪었다. 그 자의적, 타의적 폭력이 그녀 속에 강하게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끔찍한 꿈으로 터져 나와, 지독한 채식주의, 과도한 부드러움에의 집착, 식물적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세상을 향한 철저한 비폭력적 저항과 생명의 소멸을 향한 소망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과 악, 폭력과 비폭력, 아름다움과 추함의 어느 적당한 지점에 기준을 마련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 부르고 정상이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의 범주 안에서는 영혜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불편하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폭력이 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식이고 정상으로 삼은 그 기준이 매우 폭력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비난의 손가락을 나를 향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쨌든지 그렇게라도 결론을 내려야 이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야만 이젠 이 책을 따뜻한 마음으로 책꽂이에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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