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아이 넷의 둘째시누

안동꿈 2009. 8. 23. 21:04

남편에게 네명의 여동생이 있다. 그중에 나보다 네살 적은 둘째 시누는 요즘 하나도 키우기 어렵다고 아우성인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둘째는 초등학교 2학년 딸, 셋째는 7살 딸, 막내 딸 11월에 돌이다. 며칠전 첫째인 아들이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글러브가 커서 벗겨지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이 야구공에 맞아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방학이라 아이들은 집에서 바글거리고 막둥이를 데리고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수술하고 간호하려니 엄두가 나지않아 중간의 두딸을 우리집에 하룻밤 재우기로 했다. 우리집 작은딸을 이 조카들이 '언니언니' 하면서 얼마나 따르는지 같이 놀고 싶어서 방학이면 우리집에 하룻밤 자고 가는게 소원이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큰방을 내주고 아이들 넷이서 같이 자게했더니 불도 다끄고 캄캄한데서 조잘조잘 얘기가 그칠줄을 모른다.

 

아침에 조금더 일찍 아이들 먹을 것을 챙긴다고 부엌에 있으니까, 작은 조카 일곱살 딸내미가 빼꼼히 문을 열고 나온다. 인사를 하고는 언니방에 둔 가방에서 큐티(quiet time, 성경말씀을 읽으며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 책을 꺼내서 오늘의 말씀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조금 있으니까 언니가 일어나 나와서는 동생 옆에 앉아 또 큐티를 하고 있다. 작은 조카는 큐티를 끝내고 엄마가 하루치 분량의 과제를 준 듯한 수학문제집을 풀다가 언니한테 모르는걸 묻곤한다.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지만 기특한 어린 조카들의 행동에 괜히 마음이 수수하다. 직장 다닌다고 늘 분주하기만 하고 아이들의 좀 못마땅한 부분이 눈에 띄어도 잔소리 않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닫고 고치겠지' 하며 나의 게으름을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았던가.

 

시댁에 행사가 있어 함께 모이면 조카들은 자기가 밥 먹고난 그릇은 싱크대에 갖다놓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잊지 않고, 막내 동생이 울면 언니나 오빠가 얼른 달려가서 안아주고...학원 보낼 형편이 안되니 스스로 챙겨서 공부하고 모르는건 언니나 오빠한테 물어보고, 피아노도 오빠한테 물어보면서 배운단다.

 

다들 형편에 따라 생활을 하는게 어쩌면 사회가 공평하게 돌아가는 이치일지 모르지만, 물질적인 가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나에게 시누의 형편이 오히려 부럽다. 가난하고 부족함속에서 가족간에 누리는 참된 가치가, 풍족함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는 값비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둘째 시누는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키, 몸매, 얼굴 어느것도 빠지지 않는다. 목사인 남편을 만나 물질적인 풍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전업주부로 살며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썪힌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내가볼 때 둘째시누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한다고 생각한다.

 

아이 키우는 일은 수학공식처럼 어떤 것을 집어 넣으면 예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걸 안다. 어쩌면 그렇지 않기에 희망을 가지고 다들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부자만 훌륭한 자녀를 만든다거나, 공부잘하는 엄마만 아이를 잘 양육한다거나 그러면 나같은 사람은 희망이 없을 것 아닌가.

 

그러나 반짝했다가 없어지는 가치가 아닌 오고온 모든 세대를 통해 인정받은 영원한 가치를 자녀에게 가르치고 또한 투자한다면 그들의 삶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똑똑한 주부가 자녀를 많이 낳아 바르게 키워내는것 이것보다 나라에 이바지하는 것도 드물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