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어릴적 아버지에 대한 그림 두편

안동꿈 2009. 8. 16. 16:11

얼마전 잠자리에서 갑자기 까마득한 초등학교 적 일이 떠올라 슬며시 웃다가 남편한테 들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읍내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예전 70년대 중반 산골동네에는  여느 부모도 자녀의 학교에 오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입학식 졸업식때도 거의 오지 않으시는 분들이셨다. 그런데 어느 봄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아버지가 학교가 파할때 쯤 일부러 시간을 맞춰 장에 나오셨다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십리의 신작로 길을 달려 집으로 가게 되었다. 키 큰 미류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황톳길엔 봄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모양새에 덩달아 내 몸이 조금씩 들썩거렸고 살랑살랑 볼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러다 설핏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러다 그만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그대로 나는 길 위에 나동그라졌고 아버지는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계셨다. 그러다 뒤가 허전해진 아버지께서 뒤를 돌아보셨고 놀란 나머지 자전거를 팽개치고 나에게 뛰어오셨다. 다친 곳 하나없이 말짱한 나는 졸음이 덜 떨어진 눈으로 배시시 웃고 있었고...

 

아버지와 함께 떠오르는 그림은 또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것이다. 부산의 외삼촌 댁을 방문하기 위해 아버지와 나는 안동 시내에 나가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그땐 여자애들도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주 잘랐었다. 아버지는 이발기술이 좀 있으셔서 나는 어릴때 마당에서 보자기 하나 두루고 아버지가 항상 머리카락을 잘라 주셨다. 아마 먼 여행길에 멋을 낸다고 이발소에 가셨던것 같다.)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아버지는 뚝딱 금방 한 그릇을 비우더니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나'고 물으셨다. 나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너무나 맛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자장면이었으니 아무리 많아도 충분히 다 먹을 수 있었지만 어른인 아버지가  겨우 요것 먹고 될까 싶었다. 그래서 얼른 '아부지 나 그만 먹을래요 배불러요'하며 그릇을 밀어드렸다.

 

아마도 아버지는 이 일을 그리 오래 기억하지 못하셨겠지만 나로서는 대단한 참을성을 필요로 했다. 아버지가 후루룩 자장면을 드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창문 밖을 쳐다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니까...

 

내가 4학년때 쯤인가 아버지는 농사와 할아버지를 엄마에게 맡기고 부산으로 객지생활을 떠나셨다. 그래서 일년에 두번정도 명절때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니 내게 다정하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