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딸이 울고 있다(1) - 엄마의 방법

안동꿈 2009. 9. 7. 23:29

토요일.

학교 간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점심을 준비해놓는 일 외에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 12시 20분. 평소보다 일찍 초인종이 울려서 누군가 하고 열어보니 6학년 작은 딸이 울면서 '엄마 나 열나' 한다. 요즘 열나면, 열이면 열 모두 신종플루를 생각할 것이다. 얼른 손부터 씻게한 후 방에 눕게 했다. 그리고 체온을 재어보니 열이 전혀 없었다.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목이 아프냐, 머리는 어떻느냐 등 여러가지 증상을 물어보니 신종플루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딸내미가 자꾸 운다. ' 왜 열난다고 친구들이 뭐라하드나' 했더니 아니란다. 그러더니 친구 다인이를 만나러 가겠다고 갑자기 일어난다.

 " 왜 다인이랑 싸웠나"

 " 아니, 다인이랑은 한번도 안싸운다"

 " 그런데 왜 지금 만날라고 그라노"

 " 그냥 할 얘기가 있다"

밥 먹고 가라고 겨우 달랬더니, 몇숟가락만 뜨고 급히 나간다. 

 

얼마쯤 지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들어와서 눕더니 서너시간은 잔것 같다. 일어나서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부르더니 방에 들어오고 문을 좀 닫아주란다.

 

같은 반이고, 교회도 같이 다니는 친구랑 어제 싸웠는데, 이유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때 다인이랑 같이가고 자기랑 안간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하다가 싸웠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딸이 화해 문자를 보냈는데, '됐다'라고 답장이 왔고, 오늘 학교에서 딸이랑 얘기하는 친구마다 다 불러서 얘기못하게 하고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덩치도 크고 엄청 터프한 그 애는 주위 친구들을 맘대로 휘두르며 대장 행세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을때는 아무도 같이 못 놀도록 방해를 하고, 아이들도 겁이나서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다인이랑도 이 일이 너무 고민이 되어 얘기하려고 만났단다.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평소 아빠가 그 애랑 붙어다니지 말라고 할 때마다 애를 성적따라 판단하면 안된다고 그런 애들이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훈수를 놓았는데. 너무나 화가 났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가지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엄마가 개입하는게 좋은지,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결정을 못한 채 먹다보면 기운이 나서 긍정적인 방법이 떠오를 것이라면서 저녁을 먹었다.

 

문득 내가 그 애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에 딸이 여름방학 숙제로 샌드위치 만들기 재료를 사러 그 애랑 시장에 갔다가 양상추를 사기위해 큰가게를 다 지나, 노점에 쪼그리고 앉은 가난한 할머니에게 사고선 돌아올 때 그 애가 '기분이 참 좋다'고 했다면서 '엄마, ○○착하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로 마음을 돌려 놓으리란 계획하에 딸에게는 얘기하지 않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그 애의 전화번호를 알았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딸이 눈치 못채게 길을 나섰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서 그애와 두명의 친구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8시가 넘었으니 이제 곧 헤어지면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심해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길 모퉁이에서 멈춰선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다가가서 '이 시간에 뭐하노? 저녁은 먹었나'했더니, '아니요', '그래, 배고프겠네. 요 앞에서 떡볶이 사줄께 가자', '아니요, 괜찮아요'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한다. 친구들도 쭈뼛쭈뼛 뒤로 물러선다. '○○야 아줌마랑 얘기좀 하자' 했더니, 자꾸 뒷걸음을 친다.

 

겨우 붙잡고는 '방학에는 그런 일(딸에게 들은 할머니 얘기를 상세히)도 있었다며 니가 좀 터프해도 마음은 여리고 착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부터 계속 울더라 신종플루인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가 무슨일이냐고 계속해서 물으니까 마지못해 얘기하더라. 아줌마도 어릴때 많이 싸웠는데 그러고나면 마음이 안편하더라. 친구를 힘들게 하면 너도 많이 힘들거다. △△는 너와 화해하고 싶어한다. 내가 시장온다고 나왔기 때문에 △△는 너 만나는 줄도 모른다. 사이좋게 지내라. ' 했더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대충 시장을 봐서 집에 돌아오니 딸이 한참을 통화한 후, ' 엄마, ○○가 전화해서, 이제 열은 안나나. 이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어 엄마가 뭐라 했지. 뭐라고 했는데?' 그런다. 사실대로 얘기해줬더니 '엄마 고맙다' 고 매달린다. 서로 깊은 포옹을 주고 받았고 둘다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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