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즐거운책읽기

샘에게 보내는 편지 by 대니얼 고틀립

안동꿈 2009. 11. 16. 23:01

'전신마비 정신과의사인 작가가 자폐증을 앓는 손자인 샘에게 쓴, 인생을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편지'라고 소개한다면 아마 감정이 없는 로보트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을 가장 간단하게 이렇게 표현할런지 모르겠다. 물론 이 간결한 두 줄의 책 소개에 틀린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행운을 놓칠까봐 두렵다. 대니얼 고틀립,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심리학자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전신마비 환자라는 것과 손자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나는 단지 내 온 몸으로, 숨구멍조차 동원하여 그의 삶에서 진실되게 그러나 힘겹게 퍼올린 인생의 통찰력과 지혜를 빨아들이고 싶었고, 내 삶에 적용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의 글 어디에도 통속적인 슬픔이나 식상한 교훈 같은건 없었다.

 

책의 에필로그부터 읽어 봄으로써 전체적인 내용을 짐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난 여러차례 죽음의 문턱까지 왔다. 그래서 죽음이 늘 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샘, 난 오래 전부터 죽음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믿어왔다. 정말 큰 문제는 '살아있지 않는 것'이다. 슬픔, 기쁨, 사랑, 괴로움, 열정, 평온. 이 모든 것들이 삶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이 모든 감정들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선물에 아로새겨진 무늬들이다.

 

-너에게 주어진 3mm-

샘, 내가 삶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건 그래서이다. 내게 맡겨진 세상의 일부를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지. 더 크게, 더 좋게 만들려고 하지 않고, 바꾸려 하지도 않고 말이다. 나는 그것을 돌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네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내게 맡겨진 삼 밀리미터를 돌보는 일 중의 하나이다.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바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매사에 완고한 분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커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느꼈던 완고함이 사실은 당신의 인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잃어버린 것을 놓고 마음이 슬퍼할 때, 영혼은 새로 얻은 것을 놓고 기뻐한다-

모든 감정은 왔다가 가는 거야. 그러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려. 좌절감과 분노, 피해의식을 안고 기다린다고 해서 버스가 더 빨리 오는 것은 아니지. 인내심을 갖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해서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때가 되면 오는 거야. 올 것은 온다고 믿고 기다려.

 

-상처받은 자가 상처를 준다-

난 어머니가 나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를 위해 싸워서가 아니라. 날 믿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게 뿌듯했다. 어머니는 내가 도움을 요청한 후에 도움을 주었다. 당신 혼자 알아서 판단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싸우되, 그것을 당신의 싸움으로 번지게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들을 믿고 이해하는 차원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인생에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부모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많은데, 자기까지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힘들어하는 만큼 자신의 인생을 힘들게 만든다. 또 그런 아이들은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샘, 부모는 언제나 부모일 수밖에 없고,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식과 부모는 서로 보살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그 아이들도 자기 미래를 행복하게 내다본다.

 

-사람의 마음은 고장난 콩팥-

마음에 대해 삼십여 년 동안 공부한 끝에,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의 마음은 '고장난 콩팥이다'

콩팥은 매일 백구십 리터 정도의 혈액을 여과해서 필수영양소를 걸러내고 나머지 액체는 몸 밖으로 배출한다. 우리의 마음은 매일 수십억 개가 족히 넘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단순한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에서부터 과거 회상, 미래 예측, 감정 반응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거리도 많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마음은 영양가 있는 생각과 노폐물로 처리해야 할 생각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콩팥은 혈액 중에서 영양분을 많이 걸러내고 극히 일부분만 노폐물로 배출하는 반면, 우리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의 생각 중에서 적어도 구십 퍼센트는 마음 밖으로 배출해야 할 영양가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일부분씩 발췌함으로써 그의 메시지에 손상을 입히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앞뒤 문맥을 통하여 손상되지 않은 그의 메시지 아니 그의 삶 자체를 받아들이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