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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책읽기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 by 제레미 머서

안동꿈 2009. 10. 22. 00:14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소설인 줄 착각했다. 그러나 작가가 서두에 '이 이야기는 이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다' 라고 밝힌대로 엄연히 넌픽션이다. 저자 제레미 머서는 캐나다 신문사 '오타와 시티즌'의 전도유망한 사회부 기자였다. 당시 그가 집필한 범죄 서적에 실명으로 언급한 범인으로부터 협박을 받게되자 신문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파리로 도망쳤고, 파리에서 노숙자 신세가 되어 이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 들어가게 된다.

'변장한 천사들일지 모르니 이방인을 친절로써 대하라' 셰익스피어 & 컴퍼니 문틀에 적힌대로 거기에는 갈곳없는 많은 가난한 작가들이 낡은 책장 틈에 끼어 수많은 책들을 먹어치우듯 읽고,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숙식을 해결 받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서점 주인 조지는 이 세상에서는 외면당한 그러나 자신은 변함없이 이상적인 사회로 여기는 공산주의를 여기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보여졌다.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는 문학이 펄펄 살아있고,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낭만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들의 배고픔도, 가난도, 씻지 못함도, 환경의 불결도 오히려 낭만적이어서 내게는 현기증이 나도록 부러웠고 간절히 찾고 싶은 곳이다.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사상을 잠깐 엿보자

 

'조지가 그 호텔에 머무르던 초기, 방 열쇠를 잃어버린 그는 방문을 잠그지 않고 지냈다. 어느 날 강의를 듣고 돌아와 보니 모르는 사람들 둘이 조지의 방에서 그의 책을 읽고 있었다. 공유 재산과 공동체 생활에 대한 그의 믿음을 생각하면, 그 일은 가슴벅찬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커피 말고는 대접할 것이 없는 것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부터 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수프와 빵을 준비해두었다.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센강 좌안 끝에 자리하고 있다. 정문에 서서 사과 씨를 던지면 강물에 닿을 정도로 센강과 가까이 붙어 있다. 정문에서 보면 시테 섬이 훌륭한 전망이 되어주었고, 노트르담 대성당과 시립병원, 경찰서의 당당한 벽돌을 응시할 수도 있다.

 

"진짜 작가라면 부탁 같은 건 하지 않아. 그냥 와서 침대 하나를 차지 하지. 이봐 자네, 있어도 좋아. 그렇지만 다른 별 볼일 없는 작가들과 함께 아래층에서 자라구."

 

"부유한 석유 회사, 부시 일가 같은 돈 많은 가문, 빌 게이츠 같은 카우보이 기업가들을 생각해보게. 이 사람들이 왜 게임의 규칙을 바꾸겠나? 이 사람들은 승자야. 다른 사람들이 잃고 있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공산주의는 굳어진 권력에 대항하는 사상인 만큼 그 사상에 악명을 씌우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파리에서 책 장수로 보낸 반세기를 돌이켜보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끝없는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연극. 그러나 나는 팔십대가 되었고 리어 왕처럼 서서히 재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 제2의 유아기로 접어들면서 나는 역사의 뒷골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책들을 먼지 낀 책장에 넣으며 서점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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