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어간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저마다 많은 사건과 사연들이 남겨졌겠지만, 돌아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순간처럼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우리 생활에서 1년이라는 단위를 비롯하여 한 달, 한 주, 하루, 반나절 등 여러 단위로 구분지어진 것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우리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시작한 후 빈틈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만 의욕을 잃어버리고 흐지부지 주어진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흘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여러 세분화된 단위의 경계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좋다.
나에겐 학창시절 새해를 앞두고 소망을 품었던 일들을 이루었던 소중한 기억이 있어, 요즘 청소년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나의 열띤 회고기를 영 심드렁하게 '엄마 또 무슨 어릴적 고리타분한 이야기 하려나보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아서 김새긴했지만 작으나마 그들 마음에 뭔가가 남기를 바랐던 아주 소박한 이야기를 여기 풀어본다.
나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시내로 자취방을 얻어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고등학교 한반에 시골에서 올라온 자취생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시내 중학교 출신들은 주류요, 우리 시골뜨기 자취생들은 주변인처럼 느껴졌었다.
고1때, 고등학교 입학성적을 알게 되었을 당시의 충격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중학교때 한 자리수 였던 전교 등수가 고등학교에서는 반 등수가 한자리를 넘었고 전교등수는 세자리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조용히 자취방으로 와서 작은 수첩 하나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년 목표를 적어 나갔다. 어차피 공부를 위해서 고등학교에 왔으니 무슨 거창하고 고상한 문구는 필요치 않았고, 또한 그당시 구겨진 자존심은 고상한 문구를 기억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그때 나는 반등수는 한자리, 전교등수는 반 이상을 뚝 잘라서 목표를 세워 기록을 했다. 그 기록을 하고는 다시 들춰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후 결과는 목표를 능가하였다. 나는 무척 놀라웠고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1학년을 마치는 12월 31일 밤에 나는 같은 수첩을 꺼내서 또 다시 1년 목표를 기록하되 조금 욕심을 내었다. '전교등수 한자리수' 그리고 1년뒤 그 목표치도 이루었다. 어떤 의식을 치루듯이 목표를 수첩에 기록하는 것 그건 '시작이 반...등' 이런 흔한 격려가 아닌 어떤 마술적인 힘을 부여하는 내겐 아주 요긴한 경험이었다. 이후 그 의식은 위력을 잃어갔다. 어떤 순수하지 못한 감정이 개입된 것 같기도 했다.
최근 오랜만에 내게 예전의 그 마법같은 경험을 기억케하는 일이 있었다. 1년반전 지금 근무하는 부서로 발령을 받고 주위에서 일이 고될 것이라고 염려의 눈길을 보내는 동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열심히 해보자 그리고 거기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을 한번 잡아보리라 결심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러한 것(몇등을 하겠다는둥)을 기록하는 일은 양심상 허락하지 않았고 그저 마음에 새겨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1년반이 지난 요즘 해외여행과 표창이라는 두가지를 동시에 잡게 되었다. 내가 그걸 잡기위해 무리하게 행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것은 더더욱 없었으며, 오히려 나는 양보했었는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이러한 결과를 대하고 보니 그 의식이 내겐 참 마법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창시절 치루었던 의식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시간의 경계선상에서, 결심한 목표를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수첩에 기록하는 의식(나는 이걸 지금도 의식이라고 부른다). 나만의 작은 소망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목표를 적는 의식이 그의 삶에서 큰 강줄기를 형성함으로서 모든 일상 생활이 그 목표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됨으로써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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