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눈물에 대하여

안동꿈 2010. 4. 4. 21:12

나는 참 눈물이 많다.

초등학교때는 하도 많이 울어서 '울보'라고 불렸던 기억도 있다. 그때의 기억중 하나로는 5학년때 수업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가 선생님께서 이름을 부르니까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렸었다. 내 눈물의 이유가 주로 그 정도였고, 별것 아닌 일에 잘 울었다. 그런데 눈물은 마음먹는다고 흘리기도, 참아지기도 하는게 아니어서, 너무 자주 눈물이 나는 것이 몹시 창피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 눈물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는 단순히 아파서, 혼나서, 맞아서, 내 고집대로 안되서 우는 어린 아이들의 눈물과는 다르다. 내 눈물은 '억울할 때만 흘러 나온다'라고 하면서 어줍잖은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자주 운다. 아주 슬픈 영화는 꺼이꺼이 하면서 울기도하는데, 문제는 코미디라도 어느 한 장면이 가슴을 찡하게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만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횟수는 현격히 줄어든것 같다. 그러나 이제껏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을 다 합해도 못 딸라갈 눈물을 고3, 일 년동안 흘렸을 것이다. 고3 들어가가전 봄방학때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혼자 자취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면 영락없이 울었던 것 같다. 눈물이 나면 아예 수건을 가져온다. 가볍게 시작된 눈물은 늘 통곡으로 변했으니까. 주인집에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수건으로 얼굴과 입을 가리고 울었다. 엄마에 대한 그 그리움의 눈물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완전히 없어진것 같다.

 

요즘은 가끔씩 마음이 답답하고 힘겨울 때 뭔가 이름지을 수 없는 울적한 마음이 밀려올 때 찬송가를 펴놓고 좋아하는 찬송을 찾아부르노라면 눈물이 찬양과 함께 흘러나온다. 한바탕 눈물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가벼워진다. 눈물은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고 한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몸의 독소가 다 빠져 나간듯 후련하고 가뿐한 느낌이 든다. 문제 상황에서 일단 눈물을 흘리고 나면 한 풀 꺾여서 주변 상황은 변한게 없어도 반 이상은 문제가 해결된 듯이 느껴지는건 이 카타르시스 작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집 식구들중 나와 둘째 딸은 눈물이 많고 남편과 큰 딸은 눈물이 없다. 오죽하면 남편과 큰 딸이 우는걸 한번도 못봤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받고 눈물이 많은 나와 둘째가 철없고 불안해 보여도 아마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훨씬 깨끗할 것이다. 수시로 정화 작용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겉은 근엄하고 의젓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직스러워도 수시로 정화를 하지 않은 남편과 큰 딸의 속이 멀쩡할지 오히려 걱정되는건 나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