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빠는 엄마 없을 때 우리보고 엄마한테 잘해주라고 그런데이 "
평소 속에 뭔가를 담아두지 못하고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작은 딸이 설겆이를 하는 나에게 와서 슬쩍 하는 소리다. 작은 딸이 그런 얘기를 여러번 한 걸 보면 남편이 아이들과 있을 때 자주 그런 얘기를 하나 보다. 나는 가끔 작은 아이가 아빠에게 삐졌을 때 '아빠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니가 아빠한테 삐져 있으면 아빠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노.' 라고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몇 달전 이사를 한 후 지하철 통근 지역을 좀 벗어나게 되었고 출근시간이 많이 걸려 남편이 태워줄 때가 많다.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시간이 4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나는 '괜찮은데, 안 피곤해요?' 그러고 남편은 ' 그래도 탈 거면서 뭘' 하면서 매일 태워준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준비하여 6시 50분이면 등교하는 큰 딸의 버스 통학이 늘 마음에 걸리지만 큰 딸이 늦었다고 특별히 요청하지 않으면 나서서 태워주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차를 태워 줄때마다 큰 딸에게 미안하긴 하다.
남편은 빨래와 청소를 정기적으로 해준다. 그 일은 철저히 자신의 일인양 도맡아서 해준다. 그러나 음식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일은 한번도 해준 적이 없다. 그리고 옥상 텃밭에 풀을 뽑고 새로운 모종을 심는 일도 할줄 모른다. 요즘 우리보다 젊은 부부들의 경우, 예전에는 철저히 아내의 몫으로 여겼던 일들을 남편들이 많이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남편이 나에게 가사 일을 많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나는 내가 맡아 하는 일 중에 다른 부부들의 경우에는 남편들이 해주는 일들도 제법 있다. 주로 힘쓰는 일로... 그런데 알아서 남편 와이셔츠를 다려 놓는 일, 며칠 세미나 등으로 출장 갈 일이 있을 때 여행가방을 챙기는 일은 한번도 해준 적이 없다(아마 더 나이들면 굉장히 후회할 부분인 걸 안다. 그런데 남편의 옷이나 물건들은 남편이 더 잘 알고 있으니, 할 수도 없다. 하는 시늉이라면 몰라도)
내가 시원찮은 아내라도 몇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이 싫어하는 음식을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해본 적은 없다. 남들에게 남편 흉을 본 적도 없다. 자랑은 많이 해봤다. 키 작은 남편을 생각해서, 그를 알고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키에 대한 말을 해 본적이 없다. 아직도 남편의 키를 모른다. 또한 특이한 점은 남편이 옷을 사주겠다고 열 번 얘기하면 한 번 갈 정도다(이건 여자도 아니다).
이런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직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을 생각하는 큰 딸에게는 참 재미없고, 멋없게 보였나보다. '나는 엄마처럼 안 살거다' 그런다. 서로를 조심조심 배려하는 것이 알콩달콩, 티격태격 사랑 싸움보다 훨씬 못해 보였나보다. 남편과 나는 큰소리로 싸워 본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데 며칠 전, 피곤해서 앉아있는 내게 '커피 한 잔 먹자' 그런다. 커피 타는 일이야 간단하지만, 그날은 왠지 심통이 났다. 가끔 친구에게서 듣던 휴일엔 남편이 커피를 타서 들고와 같이 먹으면 행복하다는 얘기도 생각나고... 그래서 '다른 남편들은 휴일에 아내를 위해서 커피를 타주기도 하던데 당신은 꼭 시킨다'고 다소 이기적이고도 본능적인 말을 했다. 평소 그런 얘기를 잘 듣지 못했던 남편이 좀 당황하는 듯했다. 그런 말을 해놓고 내가 미안해서 얼른 커피를 타러 가긴 했지만.
서로 상대방을 배려해도 같은 양으로 각자에게 돌아오고, 자신의 것을 스스로 챙기거나 편하고자 욕심부려도 같은 양만을 취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 두 방식은 너무나 다른 감정을 만들어 낸다. 거긴 남들이 말하듯이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부부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 부부는 좀 재미없고 멋없어도 이대로가 좋다. 그런데 남편은 불만이 없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헤헤헤.
'가족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동생들아! (0) | 2010.10.09 |
---|---|
텃밭에 심은 귀하신 배추 (0) | 2010.09.30 |
이 집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명절풍경 (0) | 2010.09.24 |
내 일상의 부스러기들 (0) | 2010.09.20 |
내가 반찬 만들때 주로 이용하는 방법 (0) | 2010.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