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이 집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명절풍경

안동꿈 2010. 9. 24. 09:28

맏며느리이자 유일한 며느리인 나의 명절은 우리나라 평균 며느리에 훨씬 못미치는 노동으로 늘 지내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명절 연휴 첫날은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대충 몇가지 음식재료를 준비하여 시댁에 간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목사님인 우리집은 명절에 우리가족들이 좋아하는 몇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가족들이 모여서 나누어 먹고 돌아가는게 전부다. 그래도 식탁풍경이 여느집과 비슷한 것은 시장에 풍성하게 선보인 나물이니 생선이니 하는 명절 음식 재료들에 유혹된 어머님이 시장 바구니 그득 자식손자들 먹일 생각에 욕심내어 사들고 오시는 까닭이다.

 

명절에 전적으로 내 손에 맡겨진 음식은 잡채와 감주(어릴적 안동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부산에서는 단술이라고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식혜라고도 한다. 나는 단술이라고는 해도 식혜라고는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안동에서는 전혀 다른 맛의 식혜라는 음료가 있기 때문이다)이다. 그래서 잡채 재료는 내가 시댁에 준비해 갈때가 많다. 그나마도 요즘은 어머님께서 준비해 놓을 때가 많아서 재료가 겹치기도 한다.

 

아버님께서 '며느리가 한 잡채와 단술이 제일 맛있다'고 늘 말씀하셔서 할때마다 긴장 되기도 하는데, 수도 없이 이 음식을 만들어 왔어도 묘한 것은 이 두 음식이 유독 만들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표현을 잘 하시는 편이어서 맛있으면 '아이구, 맛있다' 하시고 맛이 좀 못하면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시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님이 부엌을 며느리와 시누이에게 맡겨 놓으셨는데, 막내시누이까지 결혼하고난 요즘은 며느리와 똑같이 부엌에 계신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바닥에 계시고 내가 싱크대에서 열심히 씻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하시는 말씀

"위에서 비가 오는갑네" 하신다.

아차 어머님 등이 내가 뿌린 물로 젖어 있었다. 

 

17년여 함께 살아오는 동안 어머님은 한번도 '이건 왜 이랬느냐', '그건 그렇게 하지마라' 말씀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명절이면 며느리에게 주로 하시는 말씀이

"야야 좀 쉬어라."

"피곤한데 한숨 자라."

또 며느리와 머슥해지면 주로 나오는 레파토리는 딸들 흉보는 일이다. 나는 그저 '예'하고 답하지만, 나는 그 속에 나에게 그런 비슷한 부분은 없는가? 생각해 보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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