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위에 흰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살아온 날들이 쌓이면서 그리운 것들도 쌓여가는 것 같다.
내 그리움의 목록에 빠지지 않는 것중 하나가 중학교 1학년때 있었던 '교내 합창경연대회' 이다. 우리 학교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로, 학년마다 남학생이 세 반, 여학생이 세 반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교내 합창경연대회를 가졌는데, 반마다 자유곡과 지정곡을 정하여 연습하고 경연대회를 하는 것이다.
노래 연습을 하려면 피아노 반주가 있어야 하는데, 80년대 초 시골이라는 시대적 지역적 배경으로 보아 전교생 중에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학생이 한쪽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 중에 우리 동네에서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수연이는 피아노를 배웠었고, 합창경연대회 기간중에 전교생 중에 가장 인기있는 학생이었다. 반장인 나는 지휘를 맡았고, 반 친구들을 모아 연습실을 확보하는 것부터 반주자를 섭외하는 것 등 동분서주 바빴던 기억이 있다. 반주자 때문에 평소 몰래 좋아하던 선배 오빠와 다툰 기억도 있고, 연습실 때문에 선배 언니의 눈총을 받은 기억도 있다. 반 친구들이 연습에 협조를 안해서 엄청 성질 부린 기억도 난다.
중학교 1학년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서울 유수의 대학을 나오시고 첫 발령을 받으신 여선생님으로 국어 선생님이셨다. 천방지축 아직 초등생 티를 벗지 못한 우리들에게 고상한 '그리움'이라는 자유곡을 추천하셨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 외에는 아는 노래가 없었고, 그때까지 그리움이라는 가곡을 알 턱이 없었다. 선생님이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안무까지 챙겨주셨다. 밋밋하게 노래만 부르면 점수가 적다고 안무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 안무라는 것이 후렴부분 '아! 돌아오라. 아! 못 오시나' 의 '아!'라는 소절에서 모두 오른손을 45도 각도로 들고 고개도 손을 따라 갔다가 내리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어린 우리들에게는 '이게 무슨 안무야'할 정도의 것이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하신 우리 선생님은 그 정도가 최선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그것으로 우수상을 탔다.
대회가 끝나고 한참 지난후 우연히 그 그리움이란 곡을 듣게 되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대회를 준비할 땐 바쁘게 움직이느라 정말 노래가 입으로 나오는지 코로 나오는지 모르고 지나갔고 노래의 아름다움도 모르고 지났는데, 후에 들은 그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었다. 그때 그 이야기들을 폭풍처럼 함께 몰고오는 노래였다. 그때의 향기가 고스란히 내 온 몸을 휘감는 노래였다. 그 추억 때문에 급기야는 눈물이 흐르는 노래였다.
우리의 감각은 얼마나 추억에 민감한지.
'저녁강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장 상관의 소설같은 부조답례 인사문 (0) | 2011.05.13 |
---|---|
어느 택시 기사가 들려준 요즘 남자 이야기 (0) | 2011.05.12 |
블로그 포스팅과 그에 따른 책임 (0) | 2011.04.17 |
맞아죽을 각오로 쓰는 한국 남자들 비판 (0) | 2011.04.15 |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비애 (0) | 2011.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