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장엔 칠백여명의 직원이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사람이 많다보니 경조사가 자주 있다.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엔 일주일에 두 세건의 경조사가 게시판에 오른다. 아주 가까운 동료들의 슬픈 소식은 내 일같이 찾아 보지만 가끔 목례만 하고 지내는 직원들의 경조사는 가끔 부담스럽기도 하다.
며칠전에 직장 상관의 장모상이 경조사 게시판에 올랐다. 그 분은 속된 말로 평소에 너무 설치기 때문에(자신의 공적을 드러내기 위해서)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근무하기를 꺼리는 상관이다. 근무는 같이 하지 않았지만 상관이 많지 않으므로 부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정해진 경조사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부조를 해준 분들을 수신자로 하여 감사의 뜻을 담아 메일을 보낸다. 거기에는 유무형의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유형의 뜻이라면 대신 보낸 부조가 잘 전달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고, 무형은 물론 순수한 감사의 뜻일 것이다.
감사의 내용을 보면 대충 두 종류로 나눠진다. 일반적으로 장인, 장모나 시부모님의 장례에 대한 감사메일은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일관의 형식적인 내용이 많고, 친부모님의 경우는 함께 지낸 날들에 대한 추억들을 회고하는 내용이 간간이 들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분은 평소 함께 근무하는 분들도 따뜻한 정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분인데, 장모님의 장례후에 보낸 감사 메일이 보는 이들을 매우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내용인즉슨
故人이 되신 장모님께서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첫 직장의 주인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일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늘 안타깝게 여겨
자식처럼 보살펴 주셨습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 고등학교시절
교복입고 공직에 입문 했을때 기뻐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12년간의 자식의 인연이, 가진 것 하나 없는 저에게
외동딸을 내주시면서 사위의 연을 맺었습니다.
제가 약관의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장모님의 아낌없는 배려로 공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생활을 함께 하시면서 사위가 아닌 자식이라 하시고,
너의 장점인 열정을 그대로 이어가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영락공원에서 추모공원까지 가는 동안
지나간 인연으로 한없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어머님(장모님) 행복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평소 그 상사의 모습들이 이해가 되었고,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여유를 가지고 보되, 이해에서 머물러야지 휙 지나쳐서 오해까지 가버리면 먼저는 자신에게 크나큰 실패요, 또한 상대방에게도 실패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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