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저녁에 걷기

안동꿈 2011. 9. 17. 11:50

어릴적 산으로 들로 쏘다녀 비축된 체력은 마흔이 넘으면 고갈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건강검진을 하면 늘 '신체활동 부족'이라는 검진결과가 나온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아도 무릎이 시큰거리고 가끔 온 몸에 기운이 쪽 빠져 몹시 힘들때도 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저녁운동을 시작하였다. 더 나이들어 남편이나 자녀들을 힘들게 한다면 그 안타까움이 어떨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최근까지도 나는, 건강은 모름지기 세끼 밥 잘 먹고 잘 배설하고 잠 잘 자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 나열한 것들을 나는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데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고 보니 어쩔 수 없이 내 생각도 흔들렸다. 요즘 먹거리가 예전만큼 건전하지 못한데다가, 이 바쁘고 복잡한 시절에 누구도 충분한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다들 건강보조식품을 꼭 챙겨먹어야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겐 그것보다는 운동이 내 몸에 대한 더 정중한 예의 같아서 운동을 택했다.

 

저녁을 먹은 후, 작은 딸과 함께 바로 앞에  위치한 여자중학교 운동장에 갔다. 9시에 대문을 잠그기 때문에 8시가 조금 넘으면 집을 나서야 한다. 걷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딸과 얘기를 나누며 운동장을 열심히 돌았다. 요즘, 학교 운동장이 워낙 좁아 한바퀴 도는데 1분 40초 정도 걸리니, 스무 바퀴쯤 돌고나면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저녁시간이 지체되어 운동갈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자주 생겨 다른 장소를 물색하게 되었다. 학교와 거의 비슷한 거리에 지방법원이 있다. 거기에도 저녁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4시간 개방을 하고 있으니 훨씬 이용하기에 편했다. 그리고 공간이 넓어 한바퀴 도는데 5분이상이 걸린다.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전해주고, 기분이 내키면 둘이서 좀 더 고상한 이야기도 나눈다. 늦은 시간까지 업무처리를 하고있는 불켜진 법원 사무실 주변을 걷고 있노라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 운동은 여유가 아니라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황혼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플라타너스 잎을 흔든 시원한 바람이 팔을 스치는 저녁에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모녀의 풍경을 그려보지만, 연신 시계를 쳐다보는 내 빠른 몸의 움직임은 별로 낭만적이지 못하다.

 

요즘 사람들이 운동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걸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이 투자되었느냐에 따라 주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투자에 비례해서 그것이 주가 되어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박한 '저녁에 걷기'가  좋다. 내 몸을 잘 챙겨주는 부담없는 친구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