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올려놓았다. 아버지 기일에 고향 내려갔다가 큰 오빠가 보낸 편지를 보고 막내 동생이 냉큼 자기 카페에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다. 그 편지에 감동 받은 한 친구는 이렇게 블로그에 그 편지글을 올리면서, 그 친구가 눈감아 주리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군대에서 편지 써보고 30년 넘게 있다가 어머니께 편지씁니다.
뜬금없이 웬 편지냐고 놀라시진 마세요. 그냥 편지쓰고 싶어서 씁니다.
어머니께 감사한 것이 무지 많은데 생각나는 것부터 알려드릴께요.
1. 시골에서 혼자서도 너무 씩씩하게 계셔서 감사합니다.
2. 전화할때마다 괜히 걱정할까봐 명랑한 소리로 대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3. 이번 벌초할 때 몸이 안 좋으시면서도 너무도 많은 준비를 하시고 밤늦게까지 같이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 많은 친척들이 모여도 너무도 잘해주시고 이부자리도 깨끗해서 고맙습니다.
5. 80이 다된 나이에 컴퓨터 배우려는 열의가 있으시고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깨우쳐서 감사드립니다.
6. 80이 다 되도 20대 같은 총기에 가끔씩 놀래켜줘서 고맙습니다.
7. 인공관절 수술도 잘 견디시고 정성스럽게 관리해서 다리가 다 나은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8. 당신의 아들딸이 세상에서 가장 잘나고 잘 돼있다고 믿어서 감사합니다.
9. 무슨 일이든 다 잘하시고 세상일을 바르게 판단하시는 총명한 머리를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0. 조상의 음덕을 크게 입을 수 있도록 오랜세월 제사를 잘 모셔주어 감사합니다.
11. 아직도 소녀같은 기분과 생각을 간직하고 뭔가 일낼 것 같은 열정을 갖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12. 어머니께 감사한 것을 더 많이 쓸려는데 종이가 없을 정도로 감사한게 많아서 감사합니다.
큰 아들 드림
이렇게 어머니에게 감사한 일을 번호까지 붙여서 쓰고싶은 이 나이든 아들의 순수함이 감동이며 같이 살지 않아도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세세히 살피고 알고있는 그 효성스런 아들의 마음이 또한 감동이다.
그리고 그 많은 아들과 딸들을 다 훌륭히 키워내신 걸 알기에, 그리고 가끔씩 친구가 올린 어머니의 근황을 돌아볼때 구구절절 그 감사한 일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들 마음속에 그려져있는 어머니의 모습, 내 어머니나 남의 어머니나 별반 차이는 없다. 오로지 당신은 없고 그 속에 자식으로만 가득차 있는 분...
요즘은 내 안에 계신 그 어머니와 현재의 내 모습사이에 유난히 갈등이 많은 때인 것 같다. 마음속에 자리한 '어머니'라는 존재는 완전하신데, 나는 헛점투성이이고, 그 어머니는 헌신적인데 나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 안에 그려지는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없어진다. 세상이 너무도 이기적이고 개인적인데, 영원히 허물어지지않을 거룩한 도성 '어머니'라는 성도 이젠 벽에 금도가고 많이 허술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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