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명절 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전화 통화

안동꿈 2012. 1. 22. 21:52

이번 설 연휴는 토요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명절이라는 생각없이 여느 주말과 비슷한 토요일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토요일은 특별히 매이지 않아 마음은 편하나 교회청소에 주일 식사 준비에 집안 일 등으로 몸은 고된 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일 년에 두어번 있는 명절인데, 맏며느리가 되어서 설날이 임박하도록 전화 한 통 없이 오전을 보냈나보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이었다. '아차,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수화기를 드는 짧은 순간에 스친 생각이다.

 

" 야야, 아부지는 니가 늘 걱정이다. 오늘 청소도 혼자 하제. 몸 생각하면서 쉬엄쉬엄 해라. 명절에는 할 거 없다. 곰국 끓여놨고, 떡 좀 사놨고, 시금치하고 나물 몇 가지 사놨다. 올해는 니 힘든데 튀김은 하지말자."

"어머니, 뭘 좀 더 사갈까요?"

" 아무것도 필요없다. 식구들끼리 모여서 밥 한끼 먹고 가면 되는데 뭘. 빨리 올 필요 없다."

 

시어머니로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양보한 시어머니의 전화는 끊고 난 후의 며느리 마음을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신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시어머니인데, 하나 밖에 없는 며느리에게서 명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어떤 대접이 있을텐데. 가령 먼저 전화하여 안부와 필요한 걸 챙긴다든가, 미리 가서 명절 음식들을 장만한다든가. 명절 전날 저녁에는 시댁에서 자고 아침상을 차려 시어른께 대접한다든가...

 

어머님은 도대체 어떤 자존심으로 명절전에 며느리에게 미리 전화하여 이러저러한 음식 장만해 놓았다고 알려주시고, 집이 코 앞인데 천천히 오라하시고... 그러시는 것일까. 전화 서두에 아버님 얘기를 꺼내신걸 보면 아버님이 며느리가 전화도 한 통 없다고 뭐라 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면 어머님은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온 것인양 통화 하시면서 저렇게 선수를 치실 때도 있으신 것 같다.

 

나는 참 눈치없고 간 큰 며느리다. 이번 설 연휴기간 동안 어떻게 해 볼 요량으로 나는 세 권의 책을 빌려다 놓았다. 이리저리 계산해 보면 답이 안나오지만 어쨌든 마음은 정말로 간 큰 며느리임에 분명하다. 아무래도 마음씨 좋은 시어머니가 이렇게 간 큰 며느리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은근히 핑계를 대보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