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여태 저의 생일때마다 시부모님께서는 크고작은 선물들을 잊지 않고 챙겨주셨다. 아들, 손주들 생일보다 며느리 생일을 꼭 챙기시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건데, 아들, 손주들 생일은 며느리가 챙겨주리라고 믿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때와 달리 저희 집에 오셔서 생일상을 차려서 같이 드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고맙고 송구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며느리로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생일날인 토요일엔 부모님이 언제 오실지 몰라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아무리 생일상 준비를 해오신다고 해도 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시는 것이니 내 나름대로 음식준비를 해야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니, 차라리 오시지 않으면 훨씬 마음이 편할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4시쯤 부모님께서 양손 가득 찬거리, 국거리들을 사들고 오셨다. 갖가지 반찬과 생선, 미역국, 찰밥 재료들을 펼쳐 놓으신다. 제 생일상이라는 핑계로 몇 가지만 하자로 어머니께 얘기하였더니 그러자고 하신다. 생선도 빼고, 손이 많이가는 반찬은 뺐더니 재료를 사 온 것에 비해 생일상이 약소해 보였는지 아버님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 않으시다. 괜히 내가 반찬 만들기 귀찮다고 줄이는 바람에 어머님만 오해를 받으시게 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후 케익도 잘랐다.
참 촌스러운 나는 감사한 마음이 속에서는 흘러 넘쳐도 넙죽 그 말을 잘 못한다. 어머님은 나와 비슷한 부류로 '말 안해도 다 안다.' 하시리라 믿어지는데, 늘 표현력이 풍부하신 아버님은 왠지 그런 말 한마디도 잘 못하는 며느리가 어떠실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잘 하는 사람은 하고싶지만 쑥스러워서 그 말을 잘 끄집어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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