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수능을 치룬 후 가장 관심가지는 것이 알바다.
그러나 키도 표준에 훨씬 못미치고 얼굴도 너무 어려보여서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그 일이 반복되니 딸이 여간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 나 이러다가 나중에 취직도 못하는거 아냐."
그러던 중 그저께는 알바 자리가 생겼다고 나가더니 밤 11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다.
"나 이젠 엄마, 아빠 주는 돈으로 살래."
파김치가 다 된 몸으로 울먹이며 하는 소리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러 수십군데 돌아다녔는데 유일하게 연락이 온 곳이 부산에서 꽤 유명한 보쌈집이었다. 자신을 써 주는 곳이 하나도 없던 중 연락이 온 곳이니 망설일 것도 없이 찾아갔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손님들이 먹고간 테이블을 치우는 것만 했단다. 너무너무 힘이 들더란다.
함께 일하는 아줌마들이 '땡글아' 하면서 귀여워 해주시기도 하더란다. 손님들 상에 남겨진 보쌈이 너무 먹고 싶더란다...
일당 이만오천원을 받아 집에 오면서 다시 안 갈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음날 퇴근하여 오니 또 그 식당에서 연락이 와서 갔다고 한다. 연락을 받을 당시 반가움과 가기 싫은 마음이 얽혀 묘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모습을 작은 딸이 흉내를 내는데 남편과 나는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다음 날은 조금 더 나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날은 테이블 번호도 외워서 주문도 받았다고 한다. 주말에는 12시부터 10시까지 10시간을 한다고 한다.
"주말에는 손님이 엄청 많을텐데, 얼마나 힘들까..."
"큰 딸이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보쌈 한번 사주러 갈까."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염려를 나눈다.
걱정하는 우리에게 큰 딸은 이게 처음하는 알바가 아니란다. 중3 여름방학때 친구와 전단지 알바를 했던 적이 있단다. 엄마, 아빠한테 얘기하면 못하게 할까봐 숨겼다고 한다.
갓 스물의 여자아이가 첫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이 아르바이트...
부모가 마음놓고 보낼 수 있을만큼 이 사회가 그리 안전한 곳은 못된다.
그러나 우리의 염려를 뛰어넘는 딸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우리의 작은 바램은 돈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 등 책에서 읽어 머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가치들이 이 경험들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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