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늙기도 설워라 커든

안동꿈 2009. 7. 30. 19:49

  아침 출근시간.

  바쁜 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채소류를 가득 실어서 넘칠 정도로 된 시장 카트를 잡고, 계단을 한 칸씩 바퀴를 이용해 내려가면서 둔탁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할머니는 새벽에 큰 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와 동네 시장에서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출근할때 자주 만났었다. 얼마전엔 제가 도와 드리겠다고 했더니 괜찮다고하며 극구 거절을 해서 특별한 요령이 있으신가보다고 더이상 권유를 하지 않고 돌아섰고 그 이후론 할머니를 만나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오늘 젊고 건장한 한 청년이 할머니께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한번정도 거절을 한후 도움을 받으신다. 그 청년은 카트를 마치 벌서는 사람처럼 높이들고는 두세 계단씩 성큼성큼 걸어 평지까지 갖다두고 횡하니 가던길을 간다. 할머니는 그 청년 뒤에다 데고 '고맙소'라고 외친다.

 

  지난번 나의 도움을 거절한 건 여자가 도와 준다고하니 거절한 것 같았다. 얼핏봐도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이 갔다.

 

  자신의 주위를 아름답게 하는 그 청년을 본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러가지 구호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이 세상은 너무나 부조리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한사람 혹은 일부 몇몇 사람들(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더 어려워졌고,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의식있는 우리가 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에 학교다닐 때 읽은 김동길교수의 글이 문득 생각이 난다. '젊은이라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된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젊음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확한 문구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들에게 데모가 끊이지 않던 시절에 김동길교수님의 그말은 우리에게 대학생이 자기 성적만 생각하지말고, 연애만 생각하지말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구제할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한다는 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분별한 그 시절 데모에 우리의 시간들을 허비하고, 가치의 기준도 없이 휩쓸려 다니느라 그 왕성한 사유와 창조의 능력들을 소진시켜 버렸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희생과 피를 흘려 앞당긴 민주주의의 시간, 딱 그만큼 우리나라는 세계 발전사에서 뒤처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많은 시간을 들여 구호를 외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무리를 확장시켜서 대항한다고해도 권력자들이 주도해 나가는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다. 사람들은 다윗이 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 그 공간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건 어떨까? 그 청년이 했던 것처럼 연약한 자에게 희망을 주고, 그 주위에 희망 바이러스를 전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