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그 부부의 연합이 아름답다

안동꿈 2014. 11. 9. 19:00

토요일 직장에서 직원 한마음대회가 있었다.

아침에 모여 가벼운 등산을 하며 팀별로 미션을 수행한 후, 잔디구장에 모여 게임과 식사와 밴드공연 및 행운권 추첨을 끝으로 직원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짜여진 행사였다.

 

점심식사 후 밴드 공연이 있었다. 직원과 일반 음악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밴드다. 야외에서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에서 듣는 음악은 한층 더 매력있게 들렸다. 노래가 두 세곡 정도 불리고 점점 흥이 날 즈음, 직원들이 있는 뒷쪽에서 젊은 여자 분 한 분이 몸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과 잘 어우러진 그녀의 춤이 무척 아름답고 매력있다고 느꼈다. 

 

요즘 TV를 통해 현란하게 몸을 움직이는 섹시댄스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에게 그녀의 춤은 마치 치어리더의 몸 놀림처럼 흥을 돋우고, 함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춤이었고, 몸 놀림이 무척 유연하고 부드러워 아주 멋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몰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춤추며 앞으로 나오던 때 연주되던 노래가 신해철의 '그대에게' 였다. 나는 내 특유의 비현실적, 비논리적, 낭만적 사고방식으로 그녀는 신해철 광팬인 신규 직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옆 직원에게도 내 생각을 알려줬다.

그러나 대부분 직원들이 밴드나 행사 주최측에서 돈을 주고 섭외해 온 분일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을 내릴 즈음, 내 앞에 앉은 여직원이 '어느 직원 와이프 같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 직원은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계의 직원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직장 어린이집에 아침에 아이를 맡기러 가면 자주 만나는데, 저렇게 앞에 나서서 춤을 출 정도로 활발한 성격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썬그라스까지 끼고 나와서 처음엔 못 알아 봤다고 그런다.

 

그녀의 공연(?)이 끝나고 밴드의 앵콜곡까지 마친 후,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남편 직원이 보였다. 그 모습에 그녀의 춤추는 모습이 함께 떠오르면서 내 마음에 잔잔히 밀려드는 감동이 있었다. 부부의 연합이 참 아름답다고...

 

아내의 아름다운 춤 실력을 잘 아는 남편이 뻣뻣한 직원들의 분위기를 띄워줄 묘안을 생각하다가 아내에게 제안을 했을테고, 낯선 공간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남편을 위해 기꺼이 나섰을 아내. 

 

물론, 직원의 아내가 밴드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많은 직원들 앞에서 춤을 췄다는 사실 외에 더 깊은 내막은 잘 모르지만, 그 당시 내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랬고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는 것만 기억하고 싶다.

 

오랜만에 직원들과의 바깥나들이.

명산의 화려한 단풍은 아니지만 소박한 가을 산을 돌아보고, 잔디밭에 앉아서 듣던신나는 밴드의 연주들과 사무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동료와의 몸의 부딪침에서 오는 정겨움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만원버스처럼 꽉 들어찬 일상의 잡초밭이던 우리 마음에 상큼한 오솔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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