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주.
가을이 무르 익어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껴두었던 대체휴무를 꺼내 남편과 나눠 썼다.
우리는 신불산 억새를 보러 갔다. 가는 길은 한적했다.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한 동료들의 교통체증 얘기를 떠올리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사고의 단순함. 물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제도적인 면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해서는 뭔가 개선되어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평일의 한적함이 가을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한 고개 넘어설 때마다 펼쳐지는 가을 빛 산들의 향연이 가슴벅찼다. 숨가쁜 한시간 반의 발품을 팔아 만나게 된 신불산 억새평원은 그야말로 가을의 절정이었다. 오는 길에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형형색색 가을 빛 옷을 입고 많이들 와 있었다. 거기에는 광활한 가을이 있었다. 그것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기를 쓰고 찾는가 보다.
억새밭을 지나다 노신사의 전화 통화소리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친구와 같이 온 듯한, 간식 보따리를 손에 든 그 노신사는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로
"내가 휴강한다고 미리 얘기했는데..."
가을의 절정, 이 하루는 한 시간의 강의 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찾은 가을산, 그들은 모두 더 가치있는 편을 택한 표정이 역력했다.
남편과 나는 간월재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삶은 계란과 커피를 사먹고 카메라 셔터를 수 없이 누르며 무르 익은 가을을 조금이나마 담아 보려 애썼다. 유일한 모델은 이젠 웬만하면 카메라를 피하고 싶은 마흔 중반의 나.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가파른 산길이 무릎에 무리가 많이 되었다. 남편 손을 붙잡고 뒤로 걸어 내려 오기도 하고, 중간중간 쉬기도 하며, 오르던 길의 여정을 되짚으면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중년의 부부는 가을억새와도 같다.
푸석한 머리카락이 그렇고, 희끗희끗한 빛깔이 그렇고, 서로 닮아가는 모습이 그렇고, 바람에 함께 일렁이는 모양새가 그렇다.
'가족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석오조(一石五鳥) (0) | 2014.11.30 |
---|---|
그 부부의 연합이 아름답다 (0) | 2014.11.09 |
겨우 건진 여름 휴가 (0) | 2014.08.27 |
주말농장과 데이트 (0) | 2014.07.27 |
친구들 만나다 (0) | 2014.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