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마흔 여덟에 나를 돌아보다

안동꿈 2015. 2. 28. 21:00

나이 먹는 일,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누가 내게 갑자기 나이를 물으면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느 시점부터 나이 계산하는 것을 멈춘 것 같다. 더 이상 나이 먹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라고 짐작할 뿐 정확한 원인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가끔 나이에 대해 너그러워질 때도 있다. 나이 드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 있는 것 같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기분 탓이겠지...'

 

출근길 나름대로 가벼운 걸음을 옮기던 중, 문득

아! 이 걸음걸이 마흔여덟에 맞는 걸까? 

나는 걸음이 빠르기도 하지만 마음이 바쁘면 걸음걸이부터 표가 난다. 여유없는 걸음걸이는 철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감정 표출에 있어서 좀 완만해져야 할 것 같다.

나이든다고 천성이 변할까 마는,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성질내고 나면 사람들과 관계만 나빠지고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험들이 세월의 강에서 건저 올려져 창고에 잔뜩 쌓여있지 않은가.

 

이젠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그것도 남들보다 먼저 뛰어가서 더 좋은 것을 잡기 위해 허덕이던 시간들이 뒤돌아보니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다.

그것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도 차서 허리 한번 펴고자 이제사 뒤돌아보니 보여지는 것이다.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지내 왔으니, 남들도 다들 그렇겠거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야 보이는 주변의 풍경들엔 인생의 여정, 그 대열에서 이탈하여 힘없이 쓰러진 이들도 많다. 이젠 잠시 대열에서 빠져나와 그런 이들에게 찾아가는 일을 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좀더 현실적인 부분을 한가지 첨가하자면,

여러 장류(간장, 된장, 고추장 등)나 김치 등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십여년을 이어온 나의 둥지에서, 그것도 내 고유의 영역에서, 나만의 것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것(인스턴트)이 들어 있다면 뭔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그집 안주인, 우리 엄마만의 특별한 맛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이젠 형성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요즘 나의 화두는 '나이답게' 인 것 같다.

나이를 많이 먹어 쌓이니, 그것이 자주 보이는 탓인 듯하다.

 

젊을 때는 나이가, 성숙함이나 능력이나 힘 등의 기준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니 이 나이란 놈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성숙한 생활 모습이 무엇보다도 도전이 될 때가 있다. 그게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왠지 씁쓸하다. 젊은 세대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여서 말이다. 이것 또한 이 나이에 어지간히 벗어 버려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를 잊고 사는게 즐거운 생활의 근간이 된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나이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나이를 기억하는 일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철없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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