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시아버지가 핸드폰을 들고 구석방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시는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전화통화 목소리가 평소보다 다소 조심스럽기도 하고 조금 상기된 듯하게 들렸다. 명절에 통화할 사람들이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녀들과 한 다리 건너 친척들에게 안부 전화, 그리고 절친한 선후배 몇 분이신 걸로 알고 있다. 대충 통화 내용을 들으면 어느 소속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번 통화는 짐작이 가지 않던 참에 속을 훤히 들여다 보시는 어머니께서 나의 궁금증을 아시고
"너거 아부지 애인한테 전화하는 기다."
"네? ㅋㅋ"
어머님 얘기인즉슨, 아버님이 카페에 새글을 올리면 가장 먼저 와서 읽고 댓글도 부지런히 달고 격려도 해주셔서 가까워진 분인데,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은퇴하신, 여러가지로 아버님과 통하는 데가 많은 분이라 아버님이 무척 좋아하신다고 그러신다. 진작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통화도 자주하시고 직접 만나기도 하셨다고 한다.
공감이 갔다. 글쓰는 사람에게 크든 작든 한 편의 글이 만들어져 나오는 건, 자신의 일부분이 나와서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 가장 진실되고 가장 소중한 자신을 거기 내 놓을 때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벌거 벗은 모습의 자신이 거기 있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보호해 주고 싶고,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가 다가와 다정하게 말걸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마운 일일 것이다.
요즘은 우리 생활에 온라인의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오프라인의 영역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오프라인의 지인이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온라인의 지인이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온라인상의 지인이 더 많은 공감대를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동일한 관심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것, 그리고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핀 후에 연락을 시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삶에서 자기에게 동의하고 호응하는 것만큼 마음을 여는 확실한 도구도 많지 않은 것 같다.
노후에 마음이 통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고 권할 만한 일인 것 같다. 함박웃음 핀 시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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