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추억의 깻잎무침

안동꿈 2015. 8. 16. 21:04

시아버지 생신날, 내가 만든 깻잎무침을 너무나 열심히 먹는걸 본 시누이가

"새언니. 깻잎무침 다른 사람이 안먹을까봐 혼자서 다 먹어치우는거 아니에요?" 하면서 놀린다. 나는 깻잎반찬에 얽힌 어릴적 추억 한토막을 들려줄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다.

여름방학 하는 날, 옆짝이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도 되겠느냐고 했다. 가난한 시골집이라 망설여졌지만 거절하지 못해서 가자고 했다. 그 친구는 우리와 정반대쪽 마을에 살았고 우리는  둘다 학교까지는 십리가 넘는 거리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집과 우리집은 이십리가 넘는 거리에 있었다.

 

같은 동네 친구들이야 남의집 부엌의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헤아릴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는 터이지만, 먼 동네의 학교친구는 그렇지를 못해 느닷없이 방문하는 친구에게 끼니를 대접할 일이 여간 걱정되는게 아니었다. 같이 사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멀리 부산에 돈벌러 가셨고, 오빠는 대구에 공부하러 가 있으니, 여자만 넷 있는 시골집에 반찬이 제대로 있을리 만무하다.

 

 

 

때는 80년대 초, 초등학교 6학년 딸래미, 그것도 맏딸인 나는 부엌살림의 반은 책임져야할 처지였다. 나뿐만 아니라 그땐 다들 그랬다. 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무슨 반찬을 내놓아야 하나 궁리하면서 걸었고 밭두렁에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깻잎이 눈에 들어와서 따기 시작했다. 친구까지 동참시켜 한다발씩 따서 돌아왔다. 엄마가 그걸로 깻잎무침을 했는데, 그 반찬이 끼니때마다 올라왔다. 그 친구는 빈약한 대접에도 즐겁게 이틀밤을 자고 돌아가면서 내 손을 끌고 같이 자기집에도 놀러가자고 했다. 나는 못이기는척 따라나섰다.

 

친구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남매의 자녀들이 다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는 전적으로 살림만 하셨고, 끼니때마다 구색을 갖춘 밥상이 올라왔다. 맛있는 밥을 먹으며 친구에게 무척 미안했다. 그리고 친구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무척 잘 대해주었다. 그 친구에겐 몇 초 먼저 태어난 쌍둥이 언니가 있었고, 우리는 모두 같은 학년이었다. 아마 부반장이었던 나를 미리 부모님에게 잘 소개해 놓았던 것 같다. 나도 거기서 이틀을 묵고 돌아왔다.

 

어릴적 고향에서 먹은 것들은 무엇이나 추억이 되어 있지만, 그때 친구와 며칠을 지내며 계속하여 먹던 깻잎무침은 그 향기만큼이나 강렬하여 아직도 즐겨 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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