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공부 못하면 사람도 아니가?"

안동꿈 2009. 8. 8. 12:57

저녁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큰 애가 울음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 엄마. 이 여자 진짜 싸가지 없다." 그런다.

내 블로그에 있는 아침 출근 지하철 사건을 보고 하는 소리다.

  " 엄마. 그 여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챙피했겠지. 아마 그랬을껄" 하면서, 한참을 혼자서 열을 내면서 식식거린다.

 

가족은 상황의 논리를 따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만 기억한다. 평소 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딸이 엄마가 겪었을 상처를 생각하며 혼자 분해한다. 같이 덩달아서 '맞제 맞제' 할 수는 없었지만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여름방학을 시작할 무렵.

평소 노는거라면 한달치 놀토의 놀이계획을 죽 잡아놓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우리 작은 딸이, 놀이에 투자한 만큼 학업에는 당연히 빈 공간이 생기게 마련. 엄마의 염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딸이 방학에는 또 얼마나 전문적으로 놀까 싶어 큰 딸을 붙들고

  " ○○야. 이번 방학에 △△이 사람 좀 만들어라 "

  " 어. 어떻게? 그럼 얼마나 줄껀데?"

  " 얼마? 응 5만원 줄께"

  " 아싸. 뭐하면 돼? "

  " 응 공부좀 가르쳐라" 했더니

  갑자기 냅다 소리를 지른다.

  " 엄마. 그러면 공부못하면 사람도 아니가?"

  "......"

가르치기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무방비 상태에서 강력한 한 방을 맞은 나는 그냥 넉다운 되어버렸다.

 

평소 동생에게 워낙 무관심해서 한때 별명이 '어이 소 닭보듯'이었던 큰 딸. 다른 집은 자매들간에 사이도 좋던데, 우리 딸은 왜 저리 무뚝뚝할까? 세살 터울인 동생이 났을 때, 동생에게 뺏긴 사랑이 아직도 상처로 남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래도 동생을 두둔하는걸 보면서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