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친구랑 시립미술관에 갔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눈부셨다.
본관에서 전시중인 '스테이징 필름'을 안내자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느긋하게 관람을 하였다. 평소 미술관을 자주 찾지도 못할 뿐더러 이런 생소한 장르의 예술세계는 더욱 둘러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리 서두를 것 없는 우리는 마음으로 혹은 눈만으로 한걸음 한걸음 음미했다.
예술.
잘 모르지만 결코 서둘러서 만질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늘 든다. 마치 도도한 공주처럼. 한번은 그녀의 집 근처만 밟다가, 다음에 담너머로 한번 기웃거려 보다가, 그 다음엔 대문 한번 두드려 보고. 그렇게 그렇게 여러번 찾다가 그녀의 집에 가는 길이 너무나 익숙해질때 쯤 언젠가 그녀가 마음을 열어줄 때가 있다는 것이 나의 예술에 대한 소박한 이해다.
스테이징 필름은 영화도 아닌 것이 미술도 아닌 것이 아니, 영화라고도 할 수 있고 미술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래나? 아무튼 그랬다. 아름다움 보다는 우리의 삶에서, 혹은 의식 속에서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사고나 인식들이 평범한 생각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문득 떠오르는 그런 것들을 작가는 붙잡으려고 한 것 같았다. 인생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서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간과 인생에서 진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작가가 그런 생소하고 낯선 것들을 뭔가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별관에 작년에 새로 생긴 이우환공간을 찾았다. 친구랑 둘뿐인데, 티켓을 살때 설명을 듣기를 원하느냐고 묻기에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을 드린다고 했더니, 베레모를 눌러 쓴 노신사가 우리를 안내한다. 이우환공간의 설치 배경과 작가의 성장 배경부터 작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둘러 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1층에 마련된 초등학교 책걸상 같은 카페테이블에 앉았을때, 친구가 아직 몸이 시원찮은 내가 힘들까봐 관람 내내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했다.
이우환의 작품에는 커다란 돌이 많이 등장한다. 다듬은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돌이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인생과 인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는 철학을 많이 공부한 사람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는 작가의 의도를 많이 알려주기 보다는 관람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관람자의 삶의 깊이와 무게 만큼 풍부한 사유를 그 속에서 건져 올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친구랑 햇빛이 기우는 거리를 걸으며, 그저 예술의 향내를 옷깃에 살짝 묻혀 온 것으로 만족하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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